[만남]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 간송 전형필 정신 잇는 손자
문화유산 토대로 지속가능한 미술관 만드는데 중점
전통미술과 디지털 기술 융합해 세계적으로 확산
“문화유산은 미래세대의 것” 보존 최우선
간송미술관 재정적 지속가능성 위한 노력 집중

대구간송미술관 입구 박석마당에 우뚝 선 아름드리 나무기둥은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년 )의 정신을 닮았다 .
간송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는데 일생을 바쳤다. 1938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 ‘보화각’을 세워 그 안에 ‘훈민정음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신윤복의 ‘미인도’, ‘혜원전신첩’ 등 국보·보물을 담았다 .
간송이 민족혼으로 지켜낸 문화유산은 역사가 선명하다. 눈에 보이는 예술품들 아래 문화보국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겸재 정선의 그림보다 반 고흐의 그림을 먼저 접할 정도로 서양의 문화적 아이콘이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지금, 간송이 지켜낸 예술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사회적·문화적 의미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할아버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을 손자인 전인건 관장(사진 )이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대구간송미술관 초대관장으로 임명된 전 관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문화보국정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확장하고 있는지 들었다.
전인건 관장은 1971년생으로 서울이 고향이다. 보성고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 대학에서 역사학을, 고려대 대학원에서 교육행정학을 전공했다. 현재 간송미술관 관장과 대구간송미술관 관장,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운영위원, 간송메타버스뮤지엄 대표 등으로 활동 하고 있다.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발전하는 기관이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을 토대로 지속가능한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래세대의 자산인 문화유산을 지켜내고 그 가치와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미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 보존과 혁신 등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메타버스, 미디어아트, NFT(대체불가능토큰)등 기술을 결합해 세계적으로 우리문화를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1965년 설립된 한국민족미술연구소는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연구발표가 학술전시형태로 개최되면서 간송미술관 봄·가을 정기전시로 이어졌고 1971년부터 대중에게 공개됐다. 2000년대 초반 대중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됐다. 20024년 9월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등을 이끌어낸 전 관장은 간송미술관이 새로운 시대에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기여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문화유산 보존연구, 교육의 중요성, 일제 강점기 왜곡된 문화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확산하는 노력 등이 '21세기 문화보국정신'이라고 전 관장은 강조한다.
“대구간송미술관 설립의 취지도 같은 맥락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은 단순히 미술관 하나를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미술의 연구 및 보존에 기여하고, 글로벌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기대합니다. 지역사회와 긴밀한 협력이 지역문화 활성화는 물론, 한국 미술의 가치와 깊이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 등 주요 작품 99점을 활용한 이머시브&인터랙티브(immersive &interactive) 미디어아트 전시를 4월 30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었다.

조선의 회화와 서예 작품 등 전통미술의 아름다움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 대형 스크린에 펼쳐져 세대를 넘은 관람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동안 간송미술간은 미인도 원화와 디지털화 작품 전시, 혜원전신첩 속의 18세기 한양을 배경으로 한 메타버스 게임, 100개 한정으로 발행된 훈민정음해례본 NFT,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NFT 에디션 완판 등을 이끌어냈다.
우리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간송미술재단이 오래전부터 준비한 새로운 미디어브랜드 'IMMERSIVE-K'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간송미술관의 앞으로의 계획이 무엇인지 물었다.
“문화유산은 보존이 최우선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들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예술품들이 시간이 갈수록, 전시를 거듭 할수록 조명, 습도 등으로 손상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미디어, 디지털을 통해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여러 곳에서 전시도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DDP에서 전시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부니 별이 빛난다>는 간송미술관의 문화유산 IP를 활용한 최고의 결과물이다.
“그동안 선보였던 미디어전시 대부분은 유럽과 미국의 IP를 소재로 만들어졌지요.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DDP 전시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미디어전시는 모듈화 하여 공간과 규모에 따른 미디어 전시를 하려고해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 많은 곳에서 우리전통문화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공유하고 향유하는 경험을 제공하겠습니다.”

전 관장은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첩>을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소장품 중 대중에게 특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선의《화훼영모화첩》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2019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 예술작품보존 프로젝트(Bank of America Art Conservation Project)에 선정됐다. 2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통해 작품의 결손을 메우고 수리복원 작업이 진행된 후 처음 선보인다.
“겸재 정선은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이후 첫 기획전 <화조미감>에서 볼 수 있어요.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성취를 이룬 겸재 정선의 훌륭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분석으로 작품에 사용된 다양한 안료와 기법으로 복원된 겸재의 그림 속 색감은 마치 어제 그린듯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술작품보존지원프로젝트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이 2019년에 박물관으로 등록하며 외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 운영이 그리 녹록하지않을 것 같다. 간송미술관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궁금했다.
“대기업이 재단으로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미술관이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가에서 인건비는 어느 정도 지원을 받지만 연구 인력과 유물을 관리하는 과정, 수장고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등등에 비용이 많이 듭니다. 간송미술관도 1만원부터 후원을 받습니다만 미술관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NFT, 미디어, 아트숍 등 운영과 우리문화유산에 대한 팬덤 형성 등을 기대합니다.”

전 관장은 미술관의 역할 중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추진 단계에서부터 교육청과 협의를 진행했어요. 간송이 소장 중인 문화유산은 미술교육을 넘어 과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다방면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어린 친구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부족을 대구간송미술관이 선보이는 문화유산을 통해 관심을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간송미술관의 미래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K-Pop, K-Food처럼 한국의 전통문화유산들이 국경과 세대, 시간과 장소를 넘어 K-Culture로 자리 잡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미래 세대’라는 키워드는 떼려야 뗄 수 없죠. 미래의 세대가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미디어’로 접근하려 해요. K-Heritage를 알릴 수 있는 가장 편하고 즐거운 포맷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의 중·남부지역거점으로, 유일한 상설전시공간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미술관으로의 성장’이 목표이다. 또한 영남권 수리복원 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유교문화 중심지였던 대구‧경북 지역에 책, 그림 등의 지류 유물 보유량이 많기 때문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지류 문화재의 보존, 수리, 보관, 연구 등 모든 영역에서 지류유물수리복원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최근의 아동문학가 윤복진 관련 자료(14건 14점)에 대한 수리복원을 마쳤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그림, 글씨, 책 등 지류문화재에 대해 수리·복원사업도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추진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미술관을 운영하며 유지보수 등 재정적 고민도 많겠지만 보람도 많을 것 같다. “가슴 뭉클한 것은 세대를 넘어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간송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여고생의 편지, 대구간송미술관 개관 1호 관람객의 입장 순간,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개관전을 보기위해 박석마당까지 줄을 선 관람객들, 어린이, 학생, 가족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한 교육신청 조기마감 등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전인건 관장은 할아버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정신을 관람객들이 느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고미술의 아름다움과 한국적 미감이 느껴지는 예술품들을 널리 알리는데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