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23명 중 여성17명·이주노동자18명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통해 본 이주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25살 되는 딸을 잃었다.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린다. 6월 24일 아침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다가도 일어나서 그런 생각을 한다.”
아리셀 참사 유족 이순희씨가 이렇게 말했다. 이어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일하면서 세금 잘 내고, 법도 어겨본 적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안전 교육도 못 받고, 출구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고 호소했다.
아리셀 참사가 발생한지 벌써 173일이 흘렀지만, 책임자 처벌은 더디기만 하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 측이 지난달 재판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유족들을 향한 사과도 없었다. 이 씨는 “죗값을 단단히 치러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대책위원회는 참사의 원인과 법제도 개선점을 찾기 위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해 1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15층 회의실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를 통해 본 이주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연구보고회’를 열었다. 이번 연구보고서는 ‘이주·중국동포 노동자’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작성됐다.

“위험의 외주화가 위험의 이주화로 이어졌다”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 전곡산업단지에 위치한 1차 리튬배터리 제조공장인 ‘아리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는 총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사 희생자는 중국인 17명, 한국인 5명, 라오스인 1명이었고, 성비로 나누면 여성 17명. 남성 6명이 숨졌다.
사회를 맡은 이환춘 법무법인 지암 변호사는 “폭발 화재 현상에서 탈출한 이들 중 일부는 정규직 한국인 노동자들이 탈출할 때 따라간 덕분이라는 증언이 있다”며 “23명의 중대재해 참사 희생자의 다수가 왜 이주노동자, 중국 동포노동자, 여성노동자였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80%에 가까운 등록 이주노동자들이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은 “소규모 사업장의 안전, 보건 문제는 고스란히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된다”며 “이주노동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하청, 협력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위험관리의 권한이 결여된 채 위험을 무릅쓴 노동이 만연한 하청 협력 업체의 안전보건 문제 역시 이주노동자들에게 중첩된다”고 짚었다.
이어 권 위원장은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으니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권을 말하기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며 “결국 이주노동자들은 더 위험하게 일하며, 아프고 다치고 죽음에 이른다”고 했다. 실제 올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 재해 사망자의 비율도 이주노동자가 한국인 노동자보다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인 중국 동포와 여성노동자
하지만 아리셀 참사는 그간 우리가 접한 참사와 달랐다. 아리셀 희생자 23명 중 외국인의 비자현황을 보면, 재외동포(F-4)가 12명, 영주(F-5) 비자 1명, 결혼이민(F-6) 비자 2명, 방문취업(H-2) 비자 3명으로, 미등록 노동자는 한 명도 없었다. 피해자의 다수인 17명은 중국 국적으로 재외동포(F-4) 비자를 취득하고 있었다.
재외동포(F4) 비자는 단순 노무 활동에 취업이 금지되기 때문에 공장의 일용직으로 근무할 수 없다. 제도적으로는 비자로 막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벽이 허물어진 모순적인 상태다. 권 위원장은 “공적 구조를 통해 일자리 알선보다는 사적 관계나 중간 알선 업체를 통해 취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법 고용 구조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아리셀은 물량 생산량에 따라 인력을 조정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간접노동을 선호했다. 그러면서 업종과 취업의 기간에 제한이 없고, 언어 소통에 어려움이 적은 이주, 중국 동포노동자들이 회사가 원하는 최적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또 아리셀 참사는 무엇보다 여성노동자의 희생이 큰 사건이었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일자리 선택지 폭이 좁은 여성이 더욱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밀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아리셀은 최저임금에 먼 출퇴근 거리, 50세 이하라는 채용 조건을 내걸었다.
권 위원장은 “중국 동포 남성 노동자는 최저임금보다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길 선호한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고, 최저임금과 먼 거리 출퇴근을 감내할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이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