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개봉한 로맨틱 스릴러 퀴어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포스터
2024년 개봉한 로맨틱 스릴러 퀴어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  포스터

지금까지 운동을 소재로 다양한 글을 썼다. 내가 쓴 글의 결론은 더 많은 여성이 운동을 통해서 해방되길 바라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건 나부터 운동을 통해서 신체와 정신의 자유를 느꼈고 또 운동이라는 놀이를 통해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운동을 배우며 겪는 성차별이나 소외감은 별개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 게 운동이란 원래 ‘남성’의 것이다. 체육관에서 남성은 주류라고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주류다. 예를 들어서 주짓수 대회를 대비해 훈련할 때도 ‘여성부에서 나오는 기술’로 분류되는 기술이 따로 있고 그에 맞춰 연습한다.

나는 그런 구분이 누구에게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했다. 그러한 구분이 결국 여성부 기술을 한정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의식이 문제 제기로 이어지진 못했다. 코칭은 전문가의 분야이고 출발부터 반기를 들기 시작하면 훈련 자체가 어려워지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운동을 알면 알수록 여성의 신체 조건과 능력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꼭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불거졌다. 이러한 한계는 혼자 자각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외부에서 주입되는 일이 훨씬 많았다. 주짓수도 성 대결에서 여성이 남성을 이길 수 있는 종목이라고 마케팅하며 호신술로 적합하다고 알려진 운동이지만 정작 훈련할 때는 ‘체급 차이가 큰 남성에게 여성의 기술은 통하지 않는다’와 같은 말을 더 자주 듣는다.

격투기에서 체급은 결정적인 요소이고 또 격투기를 배우는 집단의 분위기가 남성 중심적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체육관에서 여성이 아무리 소수라도, 아니 그럴수록 성차별적이라고 판단되는 발언이나 남성 위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을 전부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두려움을 잊고 폭주하는 여자들의 사랑

그런 와중에 운동을 소재로 한, 강렬한 영화와 만났다. ‘러브, 라이즈, 블리딩’은 남성 중심적인 운동의 세계를 바탕으로 여성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사랑을 연료 삼아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한다.

영화는 두 여성이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되는데 그 배경이 체육관이다. ‘운동에 과하게 몰두하는 여성은 레즈비언’이라는 미국 사회의 문화적인 편견을 고스란히 흡수한 셈이다. 체육관 매니저로 무료한 삶을 살던 루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훈련하는 떠돌이 재키와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사랑으로 하나가 된 둘은 무적이다. 체육관에서 추근거리는 남자들과 주먹다짐하고 레즈비언이라고 조롱하는 이들의 시선을 비웃고 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응징하고 뒷거래로 돈을 버는 범죄자 아버지에게 복수한다.

그 과정에서 둘의 사랑은 점점 더 폭발적이고 독해진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금지 약물을 주사하고 살인 사건에도 휘말리는 등, 재키가 고향 집에 전화를 걸어 동생에게 ‘넌 사랑에 빠지지 마, 너무 지독하니까’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체육관 벽에 걸려 있던 ‘고통은 육체에서 나약함이 빠져나가는 것’이라던 표어처럼 사랑으로 두려울 게 없어진 두 사람에게 남는 건 사실 고통뿐이다.

그들의 사랑이 정점에 치달을 때 영화는 환상으로 도피한다. 약물을 주사하며 힘과 몸집을 키운 재키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헐크처럼 몸이 커지고 종국에는 거인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랑, 거짓, 출혈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대안 이전에 해방부터

근래 내가 느낀, 운동을 하면서 더 억압되는 것 같은 답답함은 결국 운동이란 것도 남성을 위해, 남성이 만든 게임이자 놀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만약 여성이 운동을 만들었다면 운동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일 것이다. 루와 재키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주류였다면 세상은,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여성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여성이 세상의 울타리를 부수고 탈주하려고 할 때 사람들은 묻는다, ‘그래서 대안이 뭔데?’ 루와 재키는 대안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눈앞에 있는 파괴, 탈주, 해방이라는 도파민을 탐닉한다. 당연하다, 여성은 그조차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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