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X2]
장애인 고려하지 않은
미술 전시장 공간·동선 설계
국공립미술관부터 개선 추세
시혜적·단기적 변화 그쳐선 안 돼

많은 예술가가 대중에게 친절히 다가가려고 해도 어쩐지 미술은 그 자체만으로 장벽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미술계에 남아있는 엘리트 주의와 화이트 큐브 형태의 전시 공간이 미술을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일까.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한 전시 서문은 물론이고, 화이트 큐브가 지닌 일상과의 단절은 미술 전시가 지닌 근원적인 불친절이다. 수많은 미술계 종사자가 이러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시 공간엔 물리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이방인, 우리가 비가시화해 왔던 그러나 직면해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은 미술 전시 공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간이 장애인의 감상을 고려하지 않은 데 있다. 특히 대부분의 작품이 시각에 의존하는 미술의 경우, 시각장애인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거대한 장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장애인 성인의 시선에 맞춘 작품의 설치와 전시 공간의 동선 설계는 휠체어 이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전시 서문이나 평론은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발간한 ‘2022년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3.9%, 이 중 미술관에서의 장애인 접근성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80.0%로 여타 문화예술 공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의 전시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할 여지가 많은 전시다. 2024년 서울시립미술관 기관 의제인 ‘연결’을 주제로 한 이 전시는 인종과 나이, 성별과 성적 지향, 신체적 조건 등의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전시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전시실의 모든 공간이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동선으로 설계됐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작품은 촉각 모형이 함께 전시돼 있었고, 영상 작품에는 자막 해설이 제공됐다. 당연한 것이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 북서울미술관 블로그를 방문해 관련 게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리고 그중 한 게시물을 저장해뒀다.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는 모두를 환대하기 위해 매개 정보를 준비하고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전시 기본 정보 및 작품 음성해설(14점), 음성해설(4점), 자막 해설(4점) 등 시청각 정보를 추가로 제공합니다. 전시장 곳곳에 있는 휴식 공간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여러분만의 속도로 전시를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올 초 국립현대미술관도 추세에 발맞춰 2024-2026 3개년 중기계획 중 하나로 ‘무장애 미술관, 모두의 미술관’을 발표했다. 점진적으로 전시 관람 환경을 개선해 장애인의 예술 향유에 힘쓸 예정이라는 의미다.
위의 두 사례에서 눈치를 챘듯이 대부분의 ‘배리어-프리’(barrier-free, 무장애)는 국공립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예술’이 상업적 전시 공간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상업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나 또한 당장 ‘배리어-프리’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업 갤러리의 중요한 지점은 컬렉터와 작가를 중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예술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낮은’은 부나 명예 등의 고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지니고 있는 물리적 위계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변화가 시혜적이고 단기적인 것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