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증오범죄로 가중사유 판단 가능한데도
판사는 ‘여성혐오’ 인정 않고 ‘심신미약’ 강조
전문가 “최근 추세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판결”

‘페미니스트니까 맞아도 된다’며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폭행한 일명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과 관련, 재판부가가 가해자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자 검찰이 불복하고 항소에 나섰다.
재판부와 달리 검찰은 이번 사건을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로 저지르지 않았으며 '가중처벌이 가능한' 여성혐오범죄로 파악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성계도 "이번 사건의 원인은 가해자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닌 여성혐오 인식에 있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규탄했다.
검찰 "전형적인 여성혐오범죄…형량 늘려야"
창원지법 진주지청 형사2부(곽금희 부장검사)는 15일 '편의점 숏컷 폭행' 가해자 A씨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며 여성 피해자를 폭행하고, 심신 미약을 이유로 형의 감경을 주장하는 등 진지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은 명백한 여성혐오범죄라고 지적했다.
또한 A씨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피해자들이 엄벌을 주장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검찰이 구형한 '징역 5년'에 미치지 못하는 형량을 선고한 1심보다 더 중한 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향후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중처벌 가능한 '여성혐오범죄', 재판부는 고려하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장을 제출하며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은 혐오범죄"라고 재차 강조했다. 1심 재판부가 이 사건에서 가중처벌 사유인 '여성혐오'를 인정하지 않아 검찰 구형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형사3단독(판사 김도형)은 가해자 A씨에 특수상해, 상해,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량을 높이는 특별양형인자 가중요소로 '피해자의 중한 상태', '업무방해의 정도가 중한 경우' 두 가지를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라거나 많은 여성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는 등의 여성혐오적 맥락은 가중요소로 두지 않았다. 여성혐오를 배제한 이유도 판결문에 기술하지 않았다. 재판부가 이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보지 않으면서 A씨를 엄벌에 처할 이유가 줄어든 셈이다.

'여성혐오범죄'는 형량을 높이는 가중사유가 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특별상해 등 주요 범죄에서 ‘비난할 만한 범행 동기’를 특별양형인자 가중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보복·원한, 증오감 또는 이에 준하는 동기로 범행을 저지르면 가중처벌 사유가 된다.
여성폭력 분야 전문가는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을 명백한 여성혐오범죄로 본다.
여성폭력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가해자는 과거 불특정 대상에게 범죄를 저지른 전과가 없고, 폭행 과정에서 ‘페미니스트는 맞아도 된다’며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편의점 숏컷 폭행’ 사건은 명백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혐오를 배제하고 심신미약만 인정한 이번 판결은 여성혐오라는 구조적 문제를 읽어내지 못한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피해자와 많은 여성들이 머리와 장을 이유로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고려해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판결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질환 치료 거부해온 가해자, 재판부는 "심신미약 인정"
재판부는 사건 당시 A씨가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판단, 검찰이 구형한 5년보다 2년 낮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배경으로 여성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그의 심신미약 상태를 주목했다.
국립법무병원과 대검찰청은 A씨를 대상으로 정신감정을 실시한 결과 “피고인은 현재 약물 복용으로 비교적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으나, 사건 발생 당시에는 자신의 행동이 타당한지에 대한 검열능력과 현실검증력이 저하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게 시사된다"며 A씨가 심신미약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검찰은 A씨가 주장하는 심신미약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립법무병원이 실시한 정신감정은 오직 A씨의 진술을 기초로 이루어진 추정 소견"이기에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다.
A씨는 시간, 장소 사람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수감, 수사, 재판과정을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2022년 상세불명의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으로 2주간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치료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고 약물 치료도 거부하기도 했다.

여성계 “사건의 본질은 심신미약 아닌 여성혐오” 비판
여성계는 "이번 사건의 원인은 가해자의 심신미약 상태가 아닌 여성혐오 인식에 있다"며 낮은 형량을 선고한 재판부를 비판했다.
진주성폭력피해상담소와 여성의당 등 225개 시민단체는 1심 선고 직후 창원지법 진주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범행의 표적으로 삼고, 오직 혐오감정으로 사람을 공격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혐오범죄’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본 사건의 원인은 정신질환도 정신장애도 아닌, 피고인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혐오 인식"이라며 "검찰의 구형대로 5년의 실형이 나와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부족한데 감형으로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고통을 안겨줬다"고 규탄했다.
이번 판결은 국내 다른 판례도 따르지 않았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정진아)는 신림 등산로에서 학교로 출근하던 여성을 강간할 목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한 ‘신림 등산로 강간살인’ 사건의 가해자 최윤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으로 여성들은 야심한 시간이 아닐지라도 안심하고 등산로를 산책하기를 망설이게 되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또한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또다시 반복됨에 따라 여성들에게 다시금 커다란 공포감을 안겨 주었다”며 해당 사건으로 여성들이 입을 피해를 짚었다.
미국은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 성 지향, 성별, 성 정체성, 혹은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유발된 범죄를 증오범죄(Hate Crime)으로 보고 엄단하고 있다.

한편, 폭행 가해자인 A씨는 지난해 11월 4일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근무하던 20대 여성 B씨를 “머리가 짧으니 페미니스트”, “나는 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 면서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폭행을 말리던 50대 남성 C씨까지 폭행하며 "같은 남자면서 왜 막냐"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왼쪽 청력을 영구적으로 잃어 평생 보청기를 착용해야 한다. 골절상 등 전치 3주의 피해를 입은 C씨는 병원과 법원을 오가다 일자리를 잃어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B씨는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 참해 "구형대로 5년을 채우지 못했고 혐오범죄라는 단어가 빠진 게 아쉽다"며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