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없이 발생하는 '익명 기댄 성희롱'
기자 대다수 이름 거론된 모욕 경험
여성 기자 신체적 폭력 경험하기도
일부 언론사, 지원 대책 마련했으나
대다수 언론사는 보호 체계 미비
언론노조 “악플, 폭력으로 인지해야”

ⓒ박상혁 기자
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댓글, 이메일을 통한 강도 높은 비난과 인신공격 등으로 정서적 소진(번아웃·burn out)을 겪고 있다. ⓒ박상혁 기자

여성신문에 입사해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낯선 이름으로 들어온 이메일엔 나와 내 어머니를 성적으로 모욕하며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끔찍한 욕설이 가득했다. 어안이 벙벙해 선배 기자들에 호소하니 “우리 메일로도 수많은 욕설이 들어온다”며 무분별한 비난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유 없는 욕설도 참아야만 하는 걸 직업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기자 생활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메일을 통한 성적 모욕이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확인하고자 경찰서에 직접 겪은 내용을 신고했다. 아동청소년과 경찰관은 피해자 조사를 마친 뒤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혐의로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종종 발생하는지 묻자 "수도 없이 많이 발생한다.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제 3자인 경찰관이 봐도 안타깝다"며 사무실에 있던 경찰관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가해자 추적과 처벌이 원활이 이루어지느냐는 질문에는 경찰관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해외 기업에 계정을 만들어 악성 메일을 보내는 이들의 경우 개인 정보 제공에 민감한 해외 기업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가해자를 잡더라도 처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죄로 판결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고를 마치고 40여일이 지나자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가 왔다. “현재로써는 가해자 추적이 어려워 단서가 나올 경우 다시 수사하겠다. 가해자를 잡지 못해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자 향한 온라인 괴롭힘 공기처럼 존재… 여성 기자 신체적 폭력 겪기도

“괴롭힘의 경험은 일종의 기자일의 ‘공기’처럼 존재한다”는 게 여성 기자들의 이야기다. ⓒPixabay
“괴롭힘의 경험은 일종의 기자일의 ‘공기’처럼 존재한다”는 게 여성 기자들의 이야기다. ⓒPixabay

여성신문 기자뿐 아니라 수많은 매체의 기자들이 강도 높은 비난과 인신공격 등으로 정서적 소진(번아웃·burn out)을 겪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404명의 기자(여성 200명, 남성 204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기자 이름을 부르며 모욕하는 경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신문사(78.4%), 인터넷신문(78.8%), 방송사(83.3%), 뉴스통신사(89.2%) 등 기자 대다수에게서 나왔다. 

특히 여성 기자들은 여성과 기자 두 정체성이 중첩돼 만성적인 괴롭힘에 시달린다. 지난해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주최한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여성기자 20명과 남성기자 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욕설, 외모 품평, 성희롱 성 댓글 등이 악성댓글이 가장 많고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찾아와 혐오성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많다”며 “온라인상에 개인 신상이나 얼굴을 공개 및 박제해 조리돌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괴롭힘의 경험은 일종의 기자일의 ‘공기’처럼 존재한다”는 게 여성 기자들의 이야기다. 여성기자에게는 남성기자가 겪지 않는 ‘외모 비하’와 ‘강간 협박’ 등의 괴롭힘이 존재했다. 여성 기자 중에서도 특히 △정치·법조 △난민·소수자 △젠더 이슈를 주로 다루는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강도의 괴롭힘을 겪었다. 얼굴이 공개되는 방송사 여성 기자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PTSD까지 시달리는 기자들, 정서적 회복 지원제도 시급

괴롭힘에 시달리는 기자들은 정서적 소진을 호소하며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한국의 언론인’에 따르면 ‘업무로 인하여 나는 정서적으로 메말라감을 느낀다’는 문항에 43.5%가, ‘나는 업무로 인해 완전히 탈진되었다고 느낀다’는 문항에 39.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PTSD’로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겪는 기자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 교수가 인터뷰한 여성 기자 대다수는 10년 뒤에도 기자를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연차와 상관없이 대부분 아니라고 답했다.

언론사들은 악성 댓글을 비롯한 일상적 성희롱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마초적 직업관’과 언론이 민간인을 공격한다는 프레임을 우려해 기자 개인이 호소하는 고통에 마땅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김수진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장은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경향신문·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사에서는 자사 기자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으나 소형 언론사를 비롯한 대다수 언론사에서는 여전히 보호 체계가 미비해 기자들이 악성 댓글에 그대로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온라인 성희롱이 기자의 자기효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이며 이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성희롱도 당연히 폭력이라는 것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특히 언론사는 자사 기자들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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