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여성에게 붙는 불편한 수식어
[기자의 눈] 여성에게 붙는 불편한 수식어
  • 진혜민 기자
  • 승인 2020.03.19 11:21
  • 수정 2021-01-05 0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찬’, ‘당당한’…
남성에 붙지 않는
성차별적 단어들
지난 1월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인생라면’ 편에서는 박은영 셰프를 ‘웍을 잡고 수타를 뽑는 당찬 중식 셰프 박은영’이라고 박 셰프를 소개했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지난 1월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인생라면’ 편에서는 박은영 셰프를 ‘웍을 잡고 수타를 뽑는 당찬 중식 셰프 박은영’이라고 박 셰프를 소개했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여성들에게 붙는 수식어가 있다. 비교적 남성에게는 덜 사용하는 수식어인 ‘당찬’, ‘당당한’ 등이 유독 여성에게 자주 쓰인다. 또한 여성감독·여성작가 등 직업을 소개할 때 ‘여성’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는다. 이는 그저 여성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인데도’ 잘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맥락이 숨겨져 있다. 

지난 1월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인생라면’ 편에서는 코미디언 유재석이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박은영 셰프로부터 전수받은 ‘유산슬 라면’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왔다. 박 셰프를 소개하는 자막에는 ‘웍을 잡고 수타를 뽑는 당찬 중식 셰프 박은영’이라고 썼다. 자막 중 ‘당차다’의 의미는 사전적으로는 ‘나이나 몸집에 비하여 마음가짐이나 하는 짓이 야무지고 올차다’라는 뜻이다.

해당 자막에 대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의 저자 위근우씨는 자신의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불편함을 드러냈다. 위씨는 “당장 사전적 의미만으로도 이 표현은 나이가 어리거나 몸집이 작으면 뭔가 시원찮을 것이라는 편견을 전제하고 그 기대와 달리 잘하는 걸 칭찬하는 어휘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차별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며 “실제로도 이 표현은 대부분 미성년 혹은 여성에 대해서만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여성을 칭찬한답시고 붙이는 수식어는 남성에게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남성이 무언가를 잘할 때 우리는 거기에 ‘당차다’는 말을 붙이는가? 아니지 않나”라고 썼다. 이어 “여성이 무언가를 프로페셔널하게 잘할 때 미디어는 그것이 여성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인데도’ 잘하는 것으로 이야기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여성 출연자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소녀 감성 친구들의 반전매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또한 여성 출연자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소녀 감성 친구들의 반전매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MBC every1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러시아 특집’에서도 여성 출연자에게만 ‘미녀’라는 수식어를 썼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MBC every1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러시아 특집’에서도 여성 출연자에게만 ‘미녀’라는 수식어를 썼다. 방송 화면 중 일부 캡처.

앞서 MBC every1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러시아 특집’에서도 여성 출연자에게만 ‘미녀’라는 수식어를 썼다. 여성 출연자에게 ‘러시아 미녀 스웨틀라나’라고 지칭한 것과 달리 다른 남성 출연자들에게는 별 다른 수식어 없이 ‘독일에서 온 다니엘’, ‘멕시코 출신의 방송인 크리스티안 부르고스’로 표현했다. 또한 방송 내내 여성 출연자들의 모든 행동에 ‘소녀들의’, ‘여자들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성들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는 ‘소녀 감성 친구들의 반전매력’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는 ‘반전’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여성은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관념을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속 여성들을 향한 차별적 수식어들은 온라인 기사에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여성 수영선수는 죄다 ‘인어공주’라고 칭한다”며 “식상하다.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셀레나 고메즈에 대한 기사를 내주는 것은 고마운데 앞에 ‘저스틴 비버 전 여친’이라는 타이틀은 이제는 좀 빼 달라”며 “지금 여성 팝스타 TOP 5에 드는 세계 최정상이다”라고 썼다. 이는 저스틴 비버에게는 ‘셀레나 고메즈의 전 남친’이라는 수식어가 잘 붙지 않은 점도 지적한 듯 보인다. 또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향한 게시물에는 “누가 장군한테 ‘풋풋한’이라는 격 떨어지는 수식어를 쓰나”라며 “‘장관급 인재’, ‘국민영웅’이라는 수식어가 좋다”고 했다.

래퍼 슬릭은 ‘여성’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슬릭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여성 래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여성’이라는 수식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나를) 소개할 때 ‘한국에서 노래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며 “그 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싶은데 항상 그것에 대해 말해야 할 의무를 진다는 게 곤란하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수식어는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를 높이기도 낮추기도 한다. 특히 여성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은 아직 그 자체만으로도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