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지역 문화예술인들
성매매 집결지 ‘희매촌’ 역사 기록
‘공간의 조각들’ 전시 열어
20일까지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놓인 분홍 의자, 작은 타이머, 우체통 등. 신동화 로컬플리커 출판사 대표가 ‘희매촌’으로 불리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모은 것들이다. ⓒ이세아 기자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놓인 분홍 의자, 작은 타이머, 우체통 등. 신동화 로컬플리커 출판사 대표가 ‘희매촌’으로 불리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모은 것들이다. ⓒ이세아 기자

낡은 분홍 의자, 작은 타이머, 우체통.... 모두 성착취 현장의 파편이다. ‘희매촌’으로 불리는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성매매 집결지에서 나온 것들이다.

6.25 전쟁 이후로 70여 년째 성구매자들이 이 동네를 찾아온다. 근처 원주역은 폐역이 됐고, 희매촌은 ‘광명마을’로 바뀌었고, 이젠 번화가도 아니건만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덕을 따라 구불구불 난 좁고 후미진 골목마다 여전히 유리방이 늘어섰다. 원주시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35개 업소가 영업 중이다. 성매매 여성 수는 50여 명으로 추정된다.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걸린 주민들 인터뷰 내용으로 만든 텍스트 그래픽 작품. ⓒ이세아 기자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걸린 주민들 인터뷰 내용으로 만든 텍스트 그래픽 작품. ⓒ이세아 기자
‘공간의 조각들’ 전시 작품 중 주민 인터뷰 내용 일부 (광명마을 사람들). ⓒ로컬플리커 제공
‘공간의 조각들’ 전시 작품 중 주민 인터뷰 내용 일부 (광명마을 사람들). ⓒ로컬플리커 제공

신동화 로컬플리커 출판사 대표는 이 골목길을 익숙하게 거닐며 사람들을 안내한다. 기록 활동가인 그는 희매촌의 역사를 기록하고 성평등 지역 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최근 다른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공간의 조각들’ 전시를 열었다. 지역의 풍경을 기록한 사진·영상, 주민 인터뷰 녹취록으로 만든 텍스트 그래픽 작품 등을 모았다. 김현정 영화감독, 박주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이성미 시인이 함께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10일엔 지역 통장들이 모여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있었다.

신 대표는 “오래전부터 희매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은 암묵적으로 역사와 기록에서 소외돼 왔다”며 “그동안 기록되지 않았던 마을의 공간과 서사를 기록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 목소리를 찾아 재생할 가치와 복구할 공동체는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신동화 로컬플리커 출판사 대표가 지난 10일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전시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신동화 로컬플리커 출판사 대표가 지난 10일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전시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이성미 시인은 광명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재료 삼아 시 ‘광명마을에는’을 지었다. ⓒ이세아 기자
이성미 시인은 광명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재료 삼아 시 ‘광명마을에는’을 지었다. ⓒ이세아 기자
전시가 열리는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 바로 옆 골목에선 여전히 성매매 업소들이 영업 중이다. ⓒ이세아 기자
전시가 열리는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 바로 옆 골목에선 여전히 성매매 업소들이 영업 중이다. ⓒ이세아 기자

전시가 열리는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는 2021년 12월 문을 열었다. 원주시가 성매매 업소 2개소를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담벼락 하나를 두고 영업 중인 업소들과 이웃하고 있다.

신 대표는 이곳 집결지 업주들과 지역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간략히 설명했다. 광명마을 투어 중엔 한 업주가 낮에 운영하는 일반 상점을 지나면서 업주와 익숙하게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경계하는 업주들도 많지만, 언젠가는 업소를 닫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어느 정도 협조적으로 나오는 업주들도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언니들이 센터나 반성매매 활동가들과 접촉하는 걸 불안해해요. 센터에 가는 걸 ‘세뇌당한다’고도 표현해요.”

그래서 센터 직원들은 문턱부터 낮추기로 했다. 업소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샛문을 내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이 조용히 센터를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작은 자활상담실도 마련했다. 여기서 상담을 받고 탈성매매에 성공해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여성도 있다. 

‘공간의 조각들’ 전시 작품 중 라태랑 춘천길잡이의 집 대표 인터뷰 내용 일부 (광명마을 사람들). ⓒ로컬플리커 제공
‘공간의 조각들’ 전시 작품 중 라태랑 춘천길잡이의 집 대표 인터뷰 내용 일부 (광명마을 사람들). ⓒ로컬플리커 제공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걸린 주민들 인터뷰 내용으로 만든 텍스트 그래픽 작품. ⓒ이세아 기자
원주시여성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리는 ‘공간의 조각들’ 전시장에 걸린 주민들 인터뷰 내용으로 만든 텍스트 그래픽 작품. ⓒ이세아 기자

희매촌은 달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원주시는 2019년 학성동 도시재생사업에 본격 착수했다. 2024년까지 217억원을 들여 학성동 290-15일대에 약 11만㎡ 규모로 공원, 전시관·공방을 갖춘 커뮤니티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업소들이 즐비했던 언덕은 공터가 됐고,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소방도로 개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일부 골목은 역전시장 문화예술거리가 됐다. 지역 예술인들이 모여 벽화를 그렸고 업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술 갤러리, 카페 등도 생겼다. 

원주시는 2009년 주민 간담회를 열었고 이후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위한 TF를 구성했다. 2019년 도시재생사업 선정과 함께 업소 9개를 매입했고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조례도 제정했다. 시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스레 집결지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나, 지역민들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다. 2022년 ‘자매포주 감금사건’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이 드러났지만 관심은 금세 사라졌다.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민선 8기 들어 성매매 집결지 폐쇄·자활지원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타 지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추진에 따라 업주들이 원주로 옮겨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최근 일부 업주들이 철거 보상을 받고도 바로 옆 건물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신 대표가 지난 2022년 11월 여성신문에 보낸 기고의 한 대목을 다시 쓴다. “누군가 연대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런 공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성 산업 생태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제는 나와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끌어와야 할 때다. 색안경을 쓴 채 그저 눈을 돌리지 말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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