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운동가·저널리스트 나르게스 모하마디
19번째 여성 수상자...무슬림 여성으론 두 번째
노벨위원회 “이란 정부의 여성 차별·억압 맞선
시위대 수십만 명 함께 기린다”

이란을 뒤흔든 ‘히잡 시위’에 앞장선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나르게스 모하마디(Narges Mohammadi·51)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란 정부의 여성 차별·억압 정책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시민 수십만 명을 함께 기린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싸워 전 세계에 파장을 일으킨 여성들이 뒤늦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이란을 뒤흔든 ‘히잡 시위’에 앞장선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나르게스 모하마디(Narges Mohammadi)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2008년 6월9일 모하마디 당시 이란인권수호자센터 대표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AP/뉴시스
이란을 뒤흔든 ‘히잡 시위’에 앞장선 여성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나르게스 모하마디(Narges Mohammadi)가 올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2008년 6월9일 모하마디 당시 이란인권수호자센터 대표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AP/뉴시스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인권투사” 모하마디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모하마디는 역대 19번째, 2021년 이후 2년 만의 여성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 무슬림 여성으로는 이란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2003) 이후 두 번째 수상자다.

위원회는 ‘히잡 시위대’의 공로도 언급하며 “시위대가 외쳤던 구호 ‘여성, 삶, 자유’는 모하마디의 헌신과 노력을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밝혔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보복, 협박, 폭력, 구금에 맞선 이란 여성들의 용기와 결단력을 강조하는 상”이라며 환영했다.

2022년 9월28일(현지시간) 키프로스 니코시아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시위대가 22세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9월28일(현지시간) 키프로스 니코시아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시위대가 22세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9월2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아미니의 의문사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여성들이 손팻말과 고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9월2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아미니의 의문사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한 여성들이 손팻말과 고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AP/뉴시스

2022년 9월, 테헤란에서 ‘히잡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는 규정 위반으로 체포돼 도덕경찰의 조사를 받던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구금 중 의문사했다. 이후 여성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위가 이어졌고, 이들을 지지하는 남성들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동참하며 이란 전역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당시 정치범으로 테헤란 에빈교도소에 투옥돼 있던 모하마디는 아미니의 의문사에 분노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옥중 시위에 나섰다. 

정부는 시위대를 가혹하게 진압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이란 당국의 총격 등으로 인해 수백 명이 살해당했고, 수만 명이 임의로 체포됐으며 구금된 사람들은 성폭행이나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조사도 없었다. 2022년 11월 유엔인권이사회는 관련 진상조사단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2023년 2월20일(현지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전통 카니발 퍼레이드에 이란 ‘히잡 시위’를 지지하는 조형물이 등장했다.  ⓒAP/뉴시스
2023년 2월20일(현지시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전통 카니발 퍼레이드에 이란 ‘히잡 시위’를 지지하는 조형물이 등장했다. ⓒAP/뉴시스
모하마디가 2022년 펴낸 인터뷰집 ‘백색 고문: 이란 여성 수감자 인터뷰’. ⓒOneworld Publications
모하마디가 2022년 펴낸 인터뷰집 ‘백색 고문: 이란 여성 수감자 인터뷰’. ⓒOneworld Publications

모하마디는 여성운동뿐 아니라 사형제 폐지, 이란 내 교도소 환경 개선 등을 촉구하는 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시린 에바디가 설립한 이란 NGO 인권수호자센터(DHRC) 부소장, 이란평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2022년 ‘백색 고문: 이란 여성 수감자 인터뷰’라는 인터뷰집을 펴냈다. 이란 당국은 모하마디를 ‘반국가 선전물 유포’ 등 혐의로 총 13번 체포했고 도합 징역 31년형, 태형 154회를 선고했다. 모하마디는 수감과 석방을 반복했고 2022년부터 다시 에빈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모하마디는 옥중에서도 서한 등을 통해 구치소·교도소의 열악한 환경, 구금자·수감자들을 향한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지난 9월16일 아미니 사망 1주기를 맞아 “이날은 이란 여성에 대한 종교적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을 기록한 날”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앞서 7월엔 “(‘히잡 시위’는) 평화, 민주주의, 인권을 달성하고 폭력과 차별에서 벗어나는 수단”, “겁에 질린 정권은 붕괴를 막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성공할 희망이 없다는 게 분명하다”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란 당국은 모하마디가 감옥에서 침묵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 1년 6개월간 남편·자녀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 노벨위원회는 “용감하게 싸운 모하마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가족들은 2015년 모하마디가 수감된 직후 이란을 떠났고 현재 프랑스 망명 중이다. 모하마디의 남편 타기 라흐마니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이 상은 인권을 위한 모하마디의 투쟁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여성, 삶, 자유를 위한 운동에 대한 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하마디의 오빠 하미드레자는 노르웨이 방송사 NRK와의 인터뷰에서 “모하마디를 대신해 정말 큰 기쁨”을 표하면서 “이 상이 이란 활동가들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르게스 모함마디가 지난 2008년 7월3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뉴시스
나르게스 모함마디가 지난 2008년 7월3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회의에서 연설하는 모습. ⓒAP/뉴시스

모하마디는 지난 9월16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우리를 더 많이 가둘수록 우리는 더 강해진다. 이란 정부는 아마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저는 학생이던 32년 전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전통, 관습, 심각한 여성 억압으로 이어지는 종교적 폭압에 맞서 싸우는 게 목표였고, 여전히 그렇습니다. (‘히잡 시위’에 참여한) 젊은 여성과 소녀들을 보면서 페미니스트로서 제 꿈과 목표가 실현에 가까워졌다고 느낍니다. 여성들은 종교적 권위주의 정권의 극심한 적대감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용기와 저항을 보여주며 이 봉기의 선봉에 섰습니다. (...) 정부의 폭력적이고 잔인한 탄압이 때때로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투쟁은 빛이 어둠을 덮고 자유의 태양이 이란 국민을 포용하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베리트 레이스-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란 정부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정부라면 모하마디를 석방하고 12월에 열릴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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