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 예산 부족 해결은커녕
내년도 운영예산 절반 넘게 삭감
위탁 중단·8개 지청서 직접 운영 방침
민우회 등 현장단체들, 25일 규탄 기자회견

고용노동부가 23년째 운영을 지원해 온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피해 상담·지원 기구 ‘고용평등상담실’. 내년도 예산이 대폭 삭감돼 현장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한국여성민우회
고용노동부가 23년째 운영을 지원해 온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 피해 상담·지원 기구 ‘고용평등상담실’. 내년도 예산이 대폭 삭감돼 현장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한국여성민우회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성차별·성폭력 피해 상담·지원 기구인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현장 단체들은 반발했다. 이들은 오는 25일 정부 결정을 규탄하고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민우회 등 전국 19개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단체로 구성된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올해 12억1500만원인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이 5억5100만원으로 절반 넘게 삭감됐다. 노동부는 민간 위탁을 중단하고 전국 8개 권역별 노동부 지청에서 담당자 1인을 채용해 직접 상담 창구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현장은 당혹한 분위기다. 최근 KB국민은행, 신한카드, 한샘, 현대카드, 한국가스공사 등 주요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직장 내 성차별·성폭력 사건이 잇따르며 고용평등상담실의 기능과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전체 상담 건수도 미투 운동이 확산한 2018년 9895건에 이어 2019년 1만 829건으로 처음 1만건을 넘었고, 2022년 1만 3198건을 기록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노동자들의 상담 요청도 늘고 있다.

그러나 운영 단체들은 고질적인 예산·인력 부족 등으로 운영상 어려움을 호소해 왔다. 노동부의 이번 결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거라는 우려가 크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고용평등상담실 홍보 자료 갈무리.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의 2022년 고용평등상담실 홍보 자료 갈무리. ⓒ고용노동부

고용평등상담실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의거해 노동부가 민간단체를 매년 공모해 선정,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2000년 시작돼 초기엔 정부상담실과 민간상담실을 함께 운영하다가 2004년 100% 민간 위탁 체제로 변경했다. 현재 전국 19개가 운영 중이다.

하는 일이 많다. 민간기업 노동자를 위해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 위반, 고용상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등 문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분쟁 해결, 위법 사항 확인 시 행정기관 사건 이송, 사업자 교육 등을 수행한다. 초기 상담뿐 아니라 피해자 재판 지원, 조사 동행, 퇴사한 내담자의 사후 모니터링, 지역 여성노동 현안 모니터링과 기자회견 등 활동 기간도 길고 범위도 넓다.

그러나 현장에선 수요와 활동 내용에 비해 수가 턱없이 적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예산 부족도 고질적 문제다. 1개 단체에 대한 지원이 연간 2000만원 수준으로 대부분 상담 인력 인건비로 쓰인다. 상담원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2017년까지 물가상승률 반영 없이 지원예산을 동결했다가 2018년 6개소 추가, 신규사업 도입으로 늘었으나, 안정적·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 2019).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는 “노동부는 인건비 지원이 아니라 운영비 지원 명목의 예산이라는 핑계로 그동안 상담원에게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만 지급할 수 있는 초저예산을 지급해 왔다”며 “그러면서도 노동부의 여성노동 관련 주요 정책으로 늘 고용평등상담실을 호명해 왔고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단체들은 자부담을 투여해 가며 헌신적으로 활동해 왔다”고 지적했다.

또 “고용평등상담실은 다른 여러 상담실을 거쳐도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가진 여성노동자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라며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은 어딜 가나 상담이 어려운 현실이나 고용평등상담실은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 보려 애써왔다”고 덧붙였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는 “정부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예산 역시 삭감했다”며 “이에 대해 항의하고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2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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