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 '10년 야인' 오세훈 야권 서울시장 단일후보는 누구
[4∙7 보궐선거] '10년 야인' 오세훈 야권 서울시장 단일후보는 누구
  • 전성운 기자
  • 승인 2021.03.23 12:59
  • 수정 2021-03-24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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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뉴시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뉴시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꺾고 야권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오 후보는 1990년대에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인천 경남아파트 일조권 소송 사건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아파트 주민들은 건축법상 고도제한과거리제한을 지키지 않아 일조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 후보는 당시 주민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고, 대기업을 상대로 승리하며 배상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일조권'이라는 개념이 헌법상 권리로 인정받게 됐고, 그는 '환경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1994년 방송계에 진출해 각종 법률 프로그램 진행과 출연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이 시기에 TV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환경 분야에서 활동도 지속했다. 1996년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장, 1997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위원을 맡았다. 

학자로서 활동도 이어졌다. 1997년 숙명여대 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했고, 이듬해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도 잠시 있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입문했다. 높은 대중적 인지도 덕에 당시 수많은 러브콜을 받았으며, 이회창 총재의 설득으로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서울 강남구을에 출마해 59.4%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4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며 '소장개혁파'로 주목받았다.

임기중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소위 '오세훈 3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 통과다.

선거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후원회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이 개정안 덕에 당시 '차떼기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던 한나라당은 이미지 쇄신을 할 수 있었다.

17대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한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 대변인을 거쳐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고,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시 나이 45살,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이었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 일부 긍정평가... 무상급식 찬반 투표 정치인생 최대 오점 꼽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4.7 보궐선거 중앙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4.7 보궐선거 중앙위원회 필승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시장 시절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그는 '보기 좋은 서울'에 집착했다.

'디자인서울'을 내세우며 도심 간판, 공공시설물 등을 정비했고, 광화문 광장, 디자인 거리 등에 수천억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특히 4200억원이 투입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있다.

그러나 "투입한 예산 대비 효과가 미미한 전시성 사업"이란 지적이 많다. 장마철에 광화문과 강남 등 도심 일대에 물난리가 나면서 "디자인에만 신경쓰다 안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반포, 뚝섬, 여의도, 난지 등 4개 한강공원을 문화,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특화공원으로 조성하는 1단계 사업까지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크루즈선을 한강에 띄우기 위해 한강 바닥을 긁어내고 서해까지 연결하겠다는 서해뱃길 사업에 이르자 "임기 중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전시성 사업"이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 좌초했다.

그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가까스로 승리하며 민선 최연소 시장이자,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시장직을 내려놨다.

서울시의회는 당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선별적·단계적 무상급식을 주장했던 오 전 시장은 강력 반발했다. 이후 서울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를 진행했다.

그러나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됐고, 그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2011년 8월 자진 사퇴했다. 두 달 뒤 치뤄진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사건은 오세훈이 정치경력 최대의 '오점'으로 꼽힌다.

나경원, 안철수 후보 내리 꺽고 부활 신호탄... "모든 것 바쳐 승리 가져오겠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후보 수락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경선 결과 발표회에서 후보 수락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정세균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패배했다.

그는 2017년 1월 탈당해 바른정당 최고위원에 선임됐지만 국민의당과 통합논의가 벌어지자 다시 탈당했다. 이후 2018년 11월 "태극기부대도 포함하는 보수통합을 해야 한다"며 재입당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지역구인 광진구 을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 장관으로 결정되면서 해볼만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정치 신인' 민주당 고민정 후보에 패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20대 대통령선거에 '올인'하겠다"며 보궐선거와 거리를 두던 그는 결국 지난 1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조건부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나경원 전 의원을 꺾고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야권 단일 후보로 확정됐다.

오세훈 후보는 23일 당선 수락 연설에서 "오늘은 위대한 서울시민의 선택의 날이다.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제 모든 것을 바쳐서 승리를 가져오겠다.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약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오 후보는 1961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태어나 서울미동초등학교, 중동중학교, 대일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때 고려대학교 법학과로 편입했고, 동 대학에서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 시절 제26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학사장교로 육군에 입영해 중위로 만기 전역했다.

동갑내기인 송현옥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와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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