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 내정된 박영선 의원. ⓒ청와대 제공
서울시장직에 세 번째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청와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최초 여성 메인 앵커를 시작으로 MBC 최초 여성 특파원, 첫 여성 원내대표, 여성 최초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여성 최초의 기록을 써온 그가 이번에는 여성 최초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박 후보는 1960년 1월22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개성에서 피난 온 어머니와 경상도 출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세 살 때 서울로 이사해 터를 잡는다. 교사 출신인 어머니의 등에 업혀 온 서울에서 운화초(현 예일초), 덕성여중, 수도여고를 졸업한 뒤 상명대 불문학과에 입학했고 1979년 경희대 지리학과로 편입해 1982년 졸업했다.

2002년 9월 11일 북한 평양의 조선중앙TV 스튜디오 앵커석에서 생방송으로 뉴스를 전하는 박영선 후보. 사진=MBC 뉴스 캡쳐
2002년 9월 11일 북한 평양의 조선중앙TV 스튜디오 앵커석에서 생방송으로 뉴스를 전하는 박영선 후보. 사진=MBC 뉴스 캡쳐

스타 앵커‧가요제 출신

모범생 이미지와 달리 박 후보의 장기는 노래다. 이미 네 살 무렵 엄마 손을 잡고 ‘KBS 아기 노래단’ 활동을 했고, 서울시립 합창단원으로도 활약했다. 1979년에는 남녀 각각 2명으로 구성된 ‘퐁퐁4중창단’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T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본선까지 진출했다. 당시 노래는 가수 강인원씨가 만든 ‘이 한밤을’이라는 곡이었다.

박 후보는 ‘스타 앵커’였다. 1981년 KBS에 입사, 첫 근무지로 춘천 발령을 받았다. “호랑이 같은 아버지”의 불호령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서울에서 춘천까지 출퇴근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이듬해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해 꿈을 이어갔다. 기자로 직군을 전환한 뒤 밤 12시대 뉴스인 ‘뉴스데이트’ 앵커로 기용됐다. 최초 여성 메인 앵커였다. 이후 경제부, 문화부, 국제부 등을 거쳤고, 여성으로는 처음 해외 특파원(미국)과 경제부장,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2011년 9월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민주당 서울시 당원대회에서 박영선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2011년 9월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민주당 서울시 당원대회에서 박영선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정동영의 권유로 정계 입문

경제부장으로 일하던 2004년 11월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에게 정계 입문을 제안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20년 넘게 방송인 외길을 걸어온 그는 정치보다는 방송이 자신의 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한번 도와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남편 이원조 변호사의 권유에 그는 고심하다 결국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서 정치인 박영선으로서의 길을 가기로 결정한다. 이후 그는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 원내 대변인, 의장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전관예우 금지법’, ‘금산분리법’ 등 굵직굵직한 입법 흔적을 남겼다. 20대 국회에서는 공직 선거에서 여성을 50% 이상 공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남녀동수법’을 대표발의했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20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한 그는 최고참인 5선의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에 이어 정치계 대표적인 여성 리더다. 특히 2007년 대선 당시 대선기획단 지원실장을 맡아 BBK 관련 의혹 제기에 앞장서 ‘BBK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후보는 “남편이 이명박 정권 때 BBK와 관련해 사찰을 받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쫓겨났다”며 “남편이 일본에서 취직하게 됐는데 처음 몇 개월간 렌트비를 내고 살다가 낭비라고 생각해서 도쿄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9년 4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앞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19년 4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 앞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차담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 번의 도전, 이번에는 승리할까

서울시장직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한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으나 박원순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패해 후보직을 양보했다. 2018년 서울시장직에 재도전했으나 경선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밀렸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직을 수행하던 박 후보는 지난 1월 26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박 후보가 본선에서 승리하면 ‘사상 최초의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이 된다. 1995년 관선 자치단체장 시대가 끝나고 제1회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여성 광역단체장은 1명도 없었다.

박 후보는 “이제는 서울도 여성 시장을 탄생시킬 때가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이라는 근본적인 선거 이유는 같은 당 후보로서 그에게는 악재다. “피해자에게 사과한다”는 메시지는 냈으나 이후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여론이 악화되기도 했다. 피해자 기자회견이 다음날인 18일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 논란이 된 남인순·진선미·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모두 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자진 사퇴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투기 의혹도 박 후보의 발목을 잡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두 번의 서울시장직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다. 박 후보의 세 번째 도전이 승리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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