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생 김지영④] '82년생 김지영' 정도면 순한 맛
[92년생 김지영④] '82년생 김지영' 정도면 순한 맛
  • 이하나, 진혜민, 김서현, 전성운 기자
  • 승인 2021.01.05 09:49
  • 수정 2021-01-07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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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 여성들의 목소리 “나아졌다지만 현실 고달파”

교육기회 평등해졌지만 사회 나오니 “여자 취급”

여성신문이 2021년 신년 기획 <92년생 김지영>을 통해 이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82년생, 92년생, 00년생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젠더갈등’이라는 이름 아래 그동안 ‘한국형 백래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주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방안 등을 살펴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백래시(Backlash)는 어떠한 아이디어, 행동 또는 물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뜻하는 단어로, 성평등 및 젠더 운동 등의 흐름에 반대하는 운동 및 세력을 ‘백래시’라 부른다.

여성신문 기획기사 '92년생 김지영'은 [인터랙티브형 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거나 URL에 복사해 붙여넣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92kim.womennews.co.kr/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82년생 김지영’ 관련 기사에는 상당한 악플이 달린다. 지난달 말에는 관객들이 고의로 평점을 주지 않는 '평점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진짜 ‘김지영’은 더욱 고달팠다

80만 6000명. 통계청의 2019년 ‘경력단절여성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결혼한 30대 여성 중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숫자다. 그중에 한 명이 ‘김지영’이다.

‘82년생 김지영’은 한 평범한 여성이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겪는 일상의 차별의 실상을 담은 책이다. ‘맘충’이라 불리는 김지영 씨는 출산과 함께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이른바 ‘경력단절 여성’이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된 이유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 정도면 ‘순한 맛’ 같아요. 누가 더 힘들다고 비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에서 김지영이 겪은 작은 성차별은 제 또래들은 너무 흔했거든요. 초등학교 때 남학생은 앞번호, 여학생은 뒷번호가 당연했죠. 남동생 밥은 제가 차려줘야 했어요. 학교 앞 바바리맨에 대처하는 법을 친구들끼리 공유하고 지하철에서 성추행 아저씨도 몇 번 만나봤죠. 성희롱도 숱하게 당했고요. 그래도 김지영은 공무원 부모 밑에서 알바 한 번 안하고 학비 걱정도 없이 졸업했고, 곧바로 정규직으로 취업해 결혼도 대기업 다니는 남자와 무난하게 했잖아요. 대학 때 알바하고 취업해선 학자금 대출 갚고 결혼해선 남편 월급 쪼개 사는 제 주변 여자들은 오히려 현실은 ‘매운 맛’이라고들 해요.”

1981년 3월생인 전업주부 이선희(가명) 씨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드러낸 동년배 평범한 여성의 삶에 공감하면서도 ‘진짜’ 현실은 더 고된 것 같다고 했다.

먼지 같은 일상의 차별은 지속됐지만 다행히 이전 세대에 비해 교육기회의 차별은 사라진 1990~200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김지영들’은 고학력으로 희망을 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는 3명 중 1명이 ‘일’을 포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결혼한 30대 여성 3명 중 1명(31%)은 경력단절 여성이다. 이 여성들의 42.0%가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육아’를 꼽았다. 27.6%는 결혼 때문에, 26.9%는 임신과 출산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확대되고 맞벌이를 선호하면서 임신·출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이들이 줄어든 반면, 육아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직장을 포기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pixabay
ⓒpixabay

 

출산·육아 때문에?…열악한 근무환경이 진짜 원인

그런데 또 다른 ‘김지영’ 김선영(가명) 씨는 결혼이나 임신은 퇴사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고 했다.

“오물이 무서워서 피하진 않잖아요. 더러워서 피하지. 직원 100명 정도 되는 탄탄한 중소기업에 다녔어요.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다가 어렵게 들어간 곳인데, 사표 내기까지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그곳에서 제 미래가 안 보인다는 거였어요. 회사를 5년 넘게 다녔는데 남자 동기가 먼저 대리, 과장 직함을 달았고요. 상사들도 다 남자였는데 남직원들을 대놓고 챙겼어요. 성희롱하는 상사들도 있었고요. 답답한 건 그게 문제라는 생각조차 안 하는 회사문화였어요. 저도 입사할 때는 직장문화라고만 생각해서 넘겼는데 그런 말과 행동이 점점 불편해지고 화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정색하면 저만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니 입을 닫게 됐어요. 승진도 이직도 어렵다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오히려 더 확실한 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2014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20~60대 비취업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근로조건 및 직장환경’을 꼽는 응답자가 184명(23.6%)으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계약만료(19.6%)’, ‘결혼·임신·출산 시 퇴사 관행(13.7%)’ 순이었다.

결혼·출산·육아가 여성이 경력단절을 겪는 주된 요인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근로조건 등 일자리의 질이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 과장’으로 불리던 김선영 씨는 이제 동네에서 ‘OO 엄마’로 불린다. 지난 2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산 그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쯤엔 다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살림하고 애 키우는 것도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남편 뒷바라지만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취업 시장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영화 '안부'의 한 장면. ⓒ1인가구영화제
영화 '안부'의 한 장면 ⓒ1인가구영화제

 

1인 가구 빠듯한 월급으로 건강한 노후 보낼 수 있을까

결혼 제도 밖 ‘김지영들’의 현실도 녹록치 않다. 80년생 최세연(가명) 씨는 1인 가구로 산 지 6년이 넘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직하면서 월세로 살다, 작년부터 전세살이 중이다.

“서울 하늘 아래 내 집 갖기”가 소원이라는 그는 “비혼 여성을 향해 곱지 않은 시선에 예전엔 짜증이 났지만 요즘은 신경도 안 쓴다”고 했다.

최세연 씨가 요즘 가장 관심 갖는 것은 ‘돈’이다. 결혼 생각이 없기 때문에 홀로 노후준비를 하려면 지금 받는 250만 원의 월급으로는 빠듯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나도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에요’라는 한 여성 점원의 말이 마음에 남더라고요. 알바를 구하러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온 김지영에게 이렇게 말하는데 책 속 김지영처럼 저도 울컥했어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알바가 정직원이 될 수도 없고 시급은 최저임금에 간신히 맞춰서 받는 일자리. 지금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지만 제 또래 여자 직원은 손에 꼽고 대부분 결혼했어요. 저는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 다음 달 관리비, 카드값 걱정부터 해야 해요. 재테크 책모임에 나가고 경제 유튜브 보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고 노후 걱정을 덜 수 있을지 걱정이 커요.”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 외 24 단체가 '2020년 제4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을 열렸다. ⓒ홍수형기자
'2020년 제4회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차별타파의 날' 기자회견 ⓒ홍수형 기자

 

고용불안·임금격차 여전…"노후 준비 무리"

올해 여성 국회의원(57명)이 역대 최대 규모로 국회에 입성했고 여성 장관(6명) 비율도 30%에 다가섰다. 상황이 나아졌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여성 고용률은 51.6%로 10년 전(47.8%)보다 3.8%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남성 고용률 70.7%와 비교하면 19.1%포인트 차이가 난다.

고용지위도 불안정하다. 지난해 상용근로자 비중은 여성(48.7%)이 남성(55.2%)보다 6.5%포인트 낮았다. 반대로 임시노동자 비중은 여성(24.9%)이 남성(12.1%)보다 12.8%포인트 높았다.

여성고용률은 경력단절 영향으로 전 연령대 중 30대에서 일시적으로 하락하는 ‘M자형’ 추이를 보였다.

지난해 1인 이상 사업체 여성 임금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 6358원으로 전년(1만 5265원)보다 1093원 올랐지만, 남성(2만 3566원)의 69.4%뿐이었다. 남성 대비 여성근로자 임금비율은 2017년(65.9%), 2018년(67.8%)로 상승 추세지만 여전히 70%도 안 된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여성은 45%(853만 2000명)로 남성(55%)보다 적었다. 남성보다 저임금인 데다 국민연금 가입률도 낮아 노후준비를 못 한 여성이 많았다. 지난해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여성 비율은 40.4%로 남성(29.3%)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준비를 하지 않은 여성 가운데 41.5%는 ‘준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앞으로 준비할 계획(32.1%),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14.6%), 자녀에게 의탁(11.7%) 순이었다.

* 인터랙티브 연결 : https://92kim.womennews.co.kr/

※ 본 기획기사와 인터랙티브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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