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②] N번방 피해자 “제 잘못 없는 것 맞죠?”
[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②] N번방 피해자 “제 잘못 없는 것 맞죠?”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3.30 10:00
  • 수정 2020-04-10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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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피해자 A씨
석달 간 성 착취
가해자 요구 묵살하자
학교·친구 사진·부모님 이름 보내와

 

[무관심 먹고 자란 성착취] 2020년 3월17일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100여 명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금전 대가를 받고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 '박사방'에 유포한 '박사' 조주빈(25)이 검거됐다. 경찰조사 결과 텔레그램 단체채팅방 '박사방'에는 최고 1만 명이 대화에 참가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150만원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고 채팅방에 참가했으며 성착취 영상이 올라올 때면 누가 더 모욕적인 말을 하는지 경쟁했다. 1990년대 저화질 8mm 캠코더로 촬영한 성착취 영상이 청계 상가에 나올 때 제대로 뿌리 뽑지 못한 디지털 성착취는 소라넷과 다크웹을 거쳐 오늘날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산업화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①'N번방' 새로운 '박사' 또 있다… ‘디지털 집단 성폭력’ 도입 필요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290
②N번방 피해자 “제 잘못 없는 것 맞죠?”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515
③소라넷 회원 100만명 감방 대신 N번방 갔다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749
④성착취 타깃된 ‘일탈계’는 왜 자기 몸을 전시하나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949

ⓒ홍수형 기자
25일 ‘박사’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처음에는 발 사진, 손 사진 같은 걸 달라고 했는데 곧 공개적인 장소에서 옷을 벗어라, 자위 행위를 해라 요구했어요.” 

A(17)는 ‘N번방’ 피해자다. 메신저 서비스인 탤레그램에서 성착취 동영상을 대량 유포한 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이 검찰에 송치된 24일 여전히 숨은 피해자로 남아있었다. 

일부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용기있게 N번방의 성착취 범죄를 경찰에 신고하고, 공분한 여성들의 모임인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프로젝트 리셋(ReSET)은 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촉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나서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신고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조주빈의 검거 이후 74명에 이르는 피해자 중 신고를 한 이들은 고작 6명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특히 A처럼 미성년 피해자인 경우 도움을 요청할 길을 모르는 일도 많다.  

실제 여성 피해자 협박에 이용됐던 가해자의 DM(1:1메시지). 해당 이미지는 A씨와 관계 없음. ⓒ독자제보
실제 여성 피해자 협박에 이용됐던 가해자의 DM(1:1메시지). 해당 이미지는 A씨와 관계 없음. ⓒ독자제보

 

A가 N번방의 성착취 동영상 요구를 받은 것은 지난해 1월부터 석달간이다. 첫 시작은 A가 중학교 2학년 때 호기심으로 소위 '일탈계'에 들면서다. 

A는 트위터에 ‘일탈계’를 만들고 벗은 가슴과 다리, 속옷차림 사진을 올렸다. 막 성에 관심이 생긴 때였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손쉽게 해외 포르노사이트와 다른 ‘일탈계’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반 SNS 계정에 ‘섹시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다 본격적으로 ‘일탈계’를 만들어 노출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자 폭발적으로 팔로워 수가 늘었다. A씨는 자신에게 ‘예쁘다’, ‘섹시하다’며 칭찬해주고 안부를 물어봐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얼굴만 안 나오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누군가가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소속 수사관이라며 연락을 해왔다. 음란물 수사중이라고 밝힌 그는 A에게 주소와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경찰 수사 과정을 전혀 몰랐던 A는 사실인 줄 알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경찰을 사칭했던 그 인물은 자기 말만 잘들으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며 처음에는 손 발 사진을 요구하다 점차 수위를 높였다고 했다. 가해자의 요구는 시도 때도 없었다. 학교에 가있는 시간에도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교복과 학교 풍경도 일부러 넣으라고 했다.  A는 “학교 수업 도중 화장실에 가서 영상을 찍어 보내고는 죽어버리려고 유서를 썼다”고 이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요구는 다양했다. 웃으며 “강간해달라”고 하는 영상도 요구했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과 영상,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과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협박 때문에 A는 울면서 요구에 따랐다. 동영상은 모두 스마트폰 셀카로 찍었다. 

이런 일이 이어지는 동안 A는 한 번도 부모님이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도 부모님이 화를 냈는데, 제가 ‘일탈계’를 했다는 것을 알면 뭐라 할지…….” A는 조씨가 검거되고 일주일이 지난 때까지도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경찰을 사칭한 가해자에게 당한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 경찰도 남성일 것 같아 무섭다고 했다.    

성 착취 당한 4개월여간 당근과 채찍이 오갔다. A가 부상을 당해 찍기 어렵다고 하자 상대방은 부상을 걱정해주었다. “그때는 영상을 찍을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걱정해주니까 정말 이 사람 말대로 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어요.”

서울종로경찰서 앞에서 여성들은 시위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익명의 일반 여성들로 구성된 '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팀'이 25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 성 착취 방 운영자와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 처벌을 요구했다. ⓒ홍수형 기자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를 오랫동안 지원해온 이현숙 탁틴내일 대표는 A의 심리에 대해 “피해자들에 흔한 심리상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성폭력 피해자는)부당한 요구를 받아도 가해자가 잠깐이나마 심리적 지지를 보인 것에 위로 받아 자신이 요구에 응하지 못 했음을 자책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는 성과 관련된 사생활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일어나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 아닌가? 그래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기 꺼리고 위축된다”고 말했다.

협박은 날로 심해졌다. A가 연락을 피하자 폭언과 함께 학교 이름, 친구들과 찍어 일반 SNS에 올렸던 사진이 문자로 왔다. 심지어 부모님의 이름까지 보냈다. A는 그때 당시 자신의 집 근처에 3,4명의 남성들이 어슬렁거렸다며 “그 놈이 보낸 남자들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에 대해 묻자 가해자가 “내가 보낸 사람이 맞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A를 향한 협박은 4개월만에 갑자기 끝났다. 어느 날 가해자는 “그동안 시키는 대로 잘 했으니 없던 일로 해 주겠다”며 사라졌다. 전화번호도 없어졌다. “이미 몸 사진이나 영상은 엄청 퍼졌을 거예요.”

A는 자신을 협박한 가해자가 ‘박사’ 조주빈인지 ‘갓갓’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다른 피해자들이 지시에 따라 ‘박사’의 서명을 몸에 쓰거나 새겼던 것과 달리 A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단어만을 새기도록 지시받았기 때문이다. 

A는 ‘박사’ 조주빈의 검거 소식을 들은 후 일주일간 잠을 거의 못 잤다. “안 봐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인터넷을 보게 돼요. N번방이 유명해졌으니까 갑자기 피해자라며 내 사진과 영상이 뜰 수도 있으니까. 무서워요.” 채팅방 운영자가 갓갓과 조주빈 외에도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지난해 2월부터 N번방 사건을 트위터에서 게속 문제삼아온 B씨는 “갓갓과 박사 말고도 성 착취 영상을 공유하는 채팅방을 운영하는 남자들이 많다”며 “잘 나가는 가해자들의 수법을 따라 하는 경우도 많아 가해자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찾을 수 있다”고 수사를 촉구했다. 

지난 28일 아침, A가 문자를 보내왔다. A는 월요일에 피해자를 지원하는 곳들에 상담을 우선 받아보겠다고 했다. “저 잘못한 거 없잖아요.”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여성긴급전화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에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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