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패배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일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9일 뉴욕에서 대선 패배 연설을 통해 “모든 여성, 특히 자신들의 믿음을 제게 보여줬던 젊은 여성들이여. 내겐 당신들의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진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깰 것”이라며 “소녀들이여, 여러분은 소중하고 강인한 존재이고, 이 세상의 모든 기회와 행운을 잡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했다. ⓒCNN 방송 캡처
“이번 패배는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일이 가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9일 뉴욕에서 대선 패배 연설을 통해 “모든 여성, 특히 자신들의 믿음을 제게 보여줬던 젊은 여성들이여. 내겐 당신들의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진 못했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깰 것”이라며 “소녀들이여, 여러분은 소중하고 강인한 존재이고, 이 세상의 모든 기회와 행운을 잡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했다. ⓒCNN 방송 캡처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는 날 저녁 우연하게 전 주한미국대사 캐서린 스티븐슨을 위한 만찬에 초대됐다. 오랜만에 방한한 스티븐슨 대사를 위한 환영 행사로 아마도 첫 미국 여성 대통령 당선 축하 자리로 생각한 주최측은 예상치 않게 스티븐슨 대사를 위로하는 만찬으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정치 노선을 떠나 스티븐슨 대사는 많은 미국 여성 지식인들과 더불어 진정 미국의 첫 여성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했다. 그를 위로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인 미국조차도 아직 여성이 지도자 위치에 오르려면 이렇게 어렵구나를 재차 느꼈고 성차별이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관문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날 이후 만난 모든 미국 여성들, 재미교포나 지식층 여성들은 한결같이 선거결과에 대한 실망과 충격, 분노를 토로했으며 동시에 미국사회, 특히 중하층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미국의 투표 분석을 보면 더욱 놀랍다. 투표한 백인 여성의 52%가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를 찍었다는 것이다. 힐러리를 찍은 백인 여성 비율은 4년 전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찍은 수보다 더 적다. 왜 미국 여성들은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여성 폄하 발언을 일삼은 트럼프를 선택했을까?

이로써 미국, 특히 미국 여성계는 큰 기로에 섰다. 우리는 미국사회가 개방적이고 자유 평등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해서 여성계도 우리나라보다 더 우월한 지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미국 여성들은 1920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선거권을 부여받았다. 이것도 자연스럽게 얻어낸 게 아니라 투쟁을 거쳐 힘겹게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 특히 유럽여성들이 벌써 누리고 있었던 권리를 취득한 것이다.

한국은 1948년 남한에서 이뤄진 첫 총선 때부터 남녀가 같은 투표권을 부여받았다. 미국 경제계의 여성 진출은 많은 진전은 있었지만 역시 우리 예상만큼 높지 않고 많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뒤처진다. 미국의 대기업 순위를 매기는 ‘포춘(Fortune 500)’ 기업 리스트를 살펴보면 여성 상임이사 수보다 ‘존(John)’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성상임이사 수가 더 많다는 재미있고 다소 슬픈 통계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은 미국에는 전국적인 출산휴가보장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가 없는 나라는 전 세계에 10곳 밖에 없는데 그 중 하나가 미국이다. 그래서 주마다 출산휴가 방침이 다르고 없는 주도 상당수다. 내가 아는 많은 미국 여성들은 회사 방침에 따라 3개월 유급 출산휴가를 받으면 잘 받는 것이고 대부분 3개월 휴가를 내려면 부분적으로 무급 내지 파트타임 급여를 감안해야 한다.

이번 선거결과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미국 여성계가 아직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아직도 미국 여성계는 가장 근본적이고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다가가는 활동을 피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선거결과가 나오자 바로 미국의 대표적 여성 정책연구센터인 여성정책연구소 헤이디 하트만 원장은 새로운 트럼프 정부에 적극적인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와 통계를 제공하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미국 여성 지도자들도 이제 트럼프 당선 충격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이고 모든 여성들을 포용할 수 있는 여성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선이 여성들에게 모두 비관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미국 대졸, 지식층 여성, 유색 여성, 이러한 계층의 기혼, 미혼 여성들이 힐러리를 뽑았다는 통계는 있다. 전반적으로는 남성들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힐러리를 선택했다. 비록 힐러리는 패배했지만 이제는 미국에서도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어느 미국인 어머니는 힐러리의 패배에 눈물은 흘리고 있는 딸에게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위로하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제 네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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