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버스터즈’
‘고스트 버스터즈’

 

‘다음 침공은 어디에’
‘다음 침공은 어디에’

‘고스트 버스터즈’ 

할리우드의 남성 페미니스트 폴 페이그 감독,

3명의 여배우와 뭉쳤다… 유쾌한 ‘젠더 뒤집기’

 

‘다음 침공은 어디에’

상영시간의 3분의 1이상 여성주의적 가치에 할애

한국 남성들에게 추천하는 마이클 무어의 신작

올해에는 유난히 여성주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외화만 해도 ‘캐롤’ ‘로렐’ ‘서프러제트’ ‘고스트 버스터즈’ ‘다음 침공은 어디에’ 등이 개봉했다. 한국영화도 ‘우리들’ ‘아가씨’ ‘비밀은 없다’ ‘굿바이 싱글’ ‘국가대표2’ ‘범죄의 여왕’ 등을 꼽을 수 있다.

드라마도 ‘디어마이 프렌즈’ ‘굿 와이프’ ‘청춘시대’ 등이 녹록치 않은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명절 스트레스에 한껏 시달린 사람이나, 긴 연휴에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위의 작품들을 몰아서 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지면관계상 두 작품만을 언급할 것이지만, 부디 나머지 작품들도 보시길 바란다.

성차가 뒤집히면 이렇게 새롭다네! ‘고스트 버스터즈’

‘고스트 버스터즈’는 1984년에 개봉했던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초자연학을 연구하다 대학에서 쫓겨난 교수들이 유령사냥꾼으로 활약하였던 코믹 액션물이 폴 페이그 감독에 의해 여성주의적 의미가 가득한 작품으로 거듭났다. 할리우드의 남성 페미니스트 감독인 폴 페이그는 ‘스파이’를 함께 찍었던 멜리사 맥카시를 비롯한 세 명의 여배우들과 힘을 합쳐 유쾌한 ‘젠더 뒤집기’를 수행하였다. ‘젠더 뒤집기’는 네 명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라는 점에서 가장 크게 기인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감상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물리학이나 공학 등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여성 과학자들이 뭉쳐서 공동체를 구한다는 영웅서사는 여성관객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일으킨다. 또 소녀들에게는 훌륭한 롤 모델로 작용한다.

그동안 액션물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거나, 연애의 대상이거나 ‘민폐녀’였으며, 무엇으로 등장하든 다 미녀였다. 가령 ‘캣 우먼’ ‘미녀삼총사’ ‘본드 걸’ ‘테이큰’ 등을 떠올려보자. 원작도 예외는 아니다. 원작에는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한명은 전화 받는 데스크 직원이었고, 또 한명은 유령퇴치의 의뢰자이자 유령에게 빙의되는 인물(시고니 위버)이다. 그리고 둘 다 주인공들의 애정을 받는다.

리메이크 판에서는 이를 완전히 뒤집는다. ‘토르’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 헴스워즈가 백치미 넘치는 금발의 근육남, 캐빈으로 등장한다. 그는 업무 능력이 제로이나 눈요기로 삼으려는 주인공들에 의해 취직이 되고, 유령에 빙의되어 민폐를 끼친다(그러나 로맨스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캐빈의 캐릭터는 우스꽝스럽지만, 그가 던지는 낯설음이 그동안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등장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전통적인 느와르물의 서사를 여성주인공에게 적용시켰던 ‘차이나타운’에서 기이한 해맑음으로 일관하다 어이없이 희생당하던 박보검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미러링’이다.

전작에서 ‘악의 축’이 수메르의 악령이었던 것과 달리, 리메이크 작에서 ‘악의 축’이 고작 내부의 ‘찌질남’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성한 여성 전사들이 싸워야 할 공동체의 적은 외부에서 오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현실에 불만을 품은 남성 루저들의 원혼이다.

영화에서 ‘유령은 없다’의 저자인 저명한 남성 학자가 주인공들을 찾아와 “내 눈 앞에 유령을 내보이면 믿겠다”고 말한다. 이때 멜리사 맥카시는 “우리가 하는 일이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더 열심히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는 오늘날 사회적 몰이해에 맞닥뜨린 여성들에게 특별한 공감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예컨대 성차별에 맞서 분투하는 여성들에게 ‘성차별은 없다’는 흰소리를 해대며 ‘나에게 그것을 온전히 납득시키라’고 요구하는 남성들의 오만함에 말려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찌질남’들의 원혼으로 위태로워진 이 세상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스트 버스터즈’는 촘촘한 인물과 서사의 비틀기를 통해, (가령 ‘조폭마누라’처럼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주인공의 성별만 바꾼 영화가 다다를 수 없었던) 여성주의의 경지를 보여준다.

진보 남성 균형감이 이쯤은 돼야지! ‘다음 침공은 어디에’

‘다음 침공은 어디’는 ‘화씨 911’ 등을 만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재치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은 천문학적인 군비를 쓰면서도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승전하지 못한 미군을 대신해 성조기를 휘날리며 유럽으로 진군한다. 그곳에서 미국에 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훌륭한 제도나 문물을 강탈해오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1년에 두 달이나 주는 유급휴가제도나 프랑스의 코스요리가 나오는 공립학교 급식, 그리고 독일의 과거사 교육과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등 복지와 노동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사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상영시간의 3분의 1이상을 여성주의적 가치에 할애한다.

튀니지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2010년의 ‘재스민 혁명’ 이후 여성의 권리를 명시한 헌법을 채택해 획기적인 성평등을 이루어내고 있다. 남녀 동수 의원제, 낙태 합법화 등은 서구에서도 달성하지 못한 높은 수준의 의제다. 물론 이것이 거저 얻어진 건 아니다. 혁명의 수습 국면에서 남성들은 함께 혁명을 이룬 여성들의 권리를 배제하려 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이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는 유구한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는 1975년 여성노동자와 주부들이 모두 일손을 놓는 파업을 벌였다. 사회는 마비됐고, 그동안 여성들의 일손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인식됐다. 이러한 힘으로 1980년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많은 은행들이 부도 사태를 맞았을 때, 여성들이 경영하던 은행들만 건재했다. 아이슬란드는 부실은행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을 쏟아 붓는 게 아니라, 위험한 투기를 일삼았던 금융인들을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이사회를 구성할 때 여성들을 40%이상 두게 하는 의무할당제를 실시했다.

여성 CEO들은 남성적인 사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를 겸허하게 들으며, 다양한 여성들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다. 정면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여성들의 얼굴은 존엄과 실존을 드러낸다. 미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기 위해, 노동, 복지, 교육, 인권, 평화 등 다양한 진보적 가치를 다루는 마이클 무어는 성평등 역시 중요한 가치임을 잊지 않는다.

지금껏 진보를 표방해 왔으나, 여성주의 의제 앞에서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의 뭍남성들의 태도와 사뭇 다른 지점이다. 영화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보여주며, 인상적인 말로 끝맺는다. 영원히 서 있을 것 같던 장벽도 몇 명이 정과 망치로 구멍을 내기 시작하자 무너졌다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구두 뒤축을 부딪쳐 집에 돌아갔듯이, 여성들의 삶을 해방할 힘은 우리 안에 있다. 정과 망치를 들고, ‘성차별’이라는 유령을 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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