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헌정기념관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3·8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 ‘여성, 대한민국을 확 바꾼다!’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며 축포가 터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시문 사진기자
지난 3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헌정기념관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3·8세계여성의날 기념행사 ‘여성, 대한민국을 확 바꾼다!’에서 결의문이 채택되며 축포가 터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시문 사진기자

최근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 독일 등 많은 국가에서는 여성 지도자가 이미 활약 중이지만, 미국은 최초의 근대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유리천장이 강하게 존재해온 상당히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1995년 베이징 제4차 세계여성대회 기조연설에서 당시 영부인으로서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을 계기로 세계 각국이 여성 인권과 권익 향상, 법‧제도의 성인지적 관점을 강화해 오고 있다.

그러나 베이징 선언 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정한 양성평등의 실현은 아직 길길이 멀다. 특히 한국은 여성에게 더욱 힘든 나라다. 외형적으로는 여성대통령과 여성총리를 배출했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이 높고 단단하다.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이 2.3%, 지난 8월 공공기관 여성상임임원은 5.7%에 불과하다. 헌정 사상 최대 여성 국회의원을 보유한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도 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나 국제의원연맹(IPU) 평균에 못 미친다. 여성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능력과 상관없이 고위직에 상징직으로 오르는 토큰 우먼(Token Woman)도 한참 지난 이야기다.

오히려 공무원 시험, 각종 국가고시 등 객관적인 성적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분야에 여성 인력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5년말 기준 국가직 여성 공무원 수가 해마다 늘어서 49.4%에 이르렀다고 한다.

요즘 주요 공무원 시험에서 여성들이 수석을 독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합격자도 해미다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보직관리와 승진에서 여성의 성장 사다리는 취약하다. 여전히 남성중심의 조직 문화나 권력 구조에 여성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도 여성에게 녹록치 않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전반적으로 정보격차(디지털 디바이드) 뿐만 아니라 성별 격차(젠더 디바이드)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WEF는 ‘산업계 성 격차 보고’에서 자동화로 인한 고용 쇼크는 결과적으로 여성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고용시장에서 자동화 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직업군에 여성이 더 취약하게 종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는 이데올로기적 갈등, 종교·민족·이해집단 간 충돌 뿐 아니라 고령화와 소비시장 정체로 수년째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서 젠더 격차, 새로운 불균형·불평등와 지식정보장벽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양성평등의 정책 이슈가 우선순위에서 밀리지는 않을지 상당히 우려스럽다. 다행히도 세계 각국이 여러 난제를 극복하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하고, 위미노믹스(womenomics)가 또 하나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일본이 2014년부터 여성 취업률과 관리자급 이상 여성 비율을 끌어올리기에 나섰고, 지난해 말 유럽연합은 ‘2016~2019 성평등 전략 연대’를 결성해 여성의 고용시장 참여율을 높이고, 남성과의 임금격차 줄이기에 나섰다.

또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는 전 세계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성평등을 이룰 경우 10년 뒤 최대 28조달러의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잠재력을 보다 높이고, 여성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하고, 역량 강화 교육에 집중해야 할 이유다.

최근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대만 차이잉원 총통과 같이 세계 정치·경제 위기 해결을 위한 ‘현실주의적이고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인’ 여성 리더십이 돋보이고 있다. 독일의 한 언론은 “남성 지도자가 저질러놓은 일을 치우는 새로운 ‘여성 민주주의(femokratie)’가 확산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제는 우리 사회 경쟁력의 한 축으로 여성인재 발굴과 활용, 여성리더 육성에 새로운 접근방식과 해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과거와 같은 ‘시혜적 접근을 통한 성차별 해소 정책’에서 벗어나 이제는 저출산·고령화, 저성장·글로벌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대안으로서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양한 사회구조적 차별을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라는 유엔의 2014년 세계 여성의 날 슬로건처럼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수용과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통해 실질적인 양성평등이 사회와 국가발전으로 연결되는 진정한 창조경제의 미래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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