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보육법 개정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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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부부뿐만 아니라, 이제는 어린 자녀를 둔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자

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찾는 것은 최대 과제다. 양질의 보육을

공적 서비스로 제공받을 수 있는 아동들의 권리와 이를 통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부모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현

행 영유아보육법의 개정 필요성과 부모와 아이들이 원하는 영유아보육 시설

등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일산에 사는 이혜숙 씨(33)는 최근 쉬던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4살난

아들을 집 근처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한 달도 안돼 직장일을 포기하고 아이

를 데리고 왔다.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면 사소하게 다쳐서 오는 것은 물론

이고, 뇌막염에 감염돼 크게 병치레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위생이나 안전, 교사수 부족과 교사 자질 문제 등을 안고 있어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 없게 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주위

여성들 가운데 취업이나 자신의 여가 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

다는 것이다.

19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이후 90년대 영유아 보육시설(어린이집·

놀이방)의 양적인 팽창은 급속도로 이뤄져 왔지만, 질적 향상은 여전히 문

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모들의 갈증이 더욱 커지고 있다. 더구

나 양육의 일차적 책임을 떠맡는 여성들에게는 절박한 문제가 아닐 수 없

다.

무엇보다도 현재 보육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개선

이 급선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10년간 영유아보육법의 3차례 ‘부

분 개정’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5대 국회에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에

의해 발의됐었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된 상태다. 지난 번

발의에 참여했던 김명섭 의원(민주당) 측은 9월 정기국회에 다시 상정할 예

정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 일정 확정이나 개정안 보완 작업은 하고

있지 않다.

현행법 가운데 반드시 개선할 사항으로, 민간단체와 전문가들이 오래전부

터 요구해온 핵심적인 부분들이 있다.

우선 영유아보육법의 기본 전제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유아 보

육은 요보호 아동에 대한 특수한 서비스가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라는 인식

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행법 제3조에는 “모든 국민은 영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을 진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와 더불어 영

유아를 건전하게 보육할 책임을 진다”고 단서를 붙여 육아는 개인의 책임

이고, 보육 서비스는 수혜자 부담이 원칙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현행법, 수혜자부담 전제와

다양한 서비스부족 문제

이러한 기본 인식의 변화와 함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육시설과 보육

비용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현재 생활보호대상자, 모

자·부자가정 등 법정 저소득층에게 보육료 전액을, 기타 저소득층(도시근

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46.7%수준 이하)에 보육료의 40%를 지원하고

있지만, 기타 저소득층의 기준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기준선의 경계에 있는

저소득 가정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기타 저소득층의 구분을 좀더 다단

계화해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보육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나치게 민간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공공시설의 확충과 민간

시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95년부터 97년까지 보

육시설확충 3개년 계획에 따라 양적인 증가는 컸지만, 증가분의 대부분은

민간보육시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보육 서비스의 79.9%를 민간

에서 공급하고 있다.

현재 보육 서비스의 유형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도 큰 문제다. 서울시

현황만 살펴봐도 장애아 전담시설이 8곳, 1∼2세 영아 전담은 4곳, 24시간

야간시설 42곳, 방과후 전담 77곳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부모의 근무

형태나 아동의 상황 등을 고려한 다양한 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지

자체의 지원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특히 사각지대에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

의 방과후 보육시설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현행 6세 미만의 취학전 아동을

대상으로 한 영유아보육법을 초등학교 연령까지 포함하는 영유아·아동보육

법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법 제16조에 보육시설 입소

연령을 12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근거 조항이 있긴 하지만, 전체 보육시

설의 보육방식을 연령별로 차별화하기 위해 독립된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

이밖에 아이들의 직접적인 보육자인 교사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격

기준과 보수교육(재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 과거 양적확충 정책으로 단시

간내 많은 수의 교사들을 배출하기 위해 자격기준이 완화돼 왔던 게 사실이

다. 뿐만 아니라 능력있는 교사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대우가 따라야

하나, 현재 민간시설의 경우 초봉 5∼60만원 정도의 낮은 보수와 장기간 근

무, 높은 교사 대 아동비율 등 열악한 현실이다. 이러한 보육교사의 낮은 처

우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또한 보육 서비스의 질적 보장을 위해서 보육관련 전문가, 시설 종사자,

보호자, 관련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보육평가위원회의 신설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보육시설 운영 및 프로그램에 대해 철저히 평가하고 수요자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효성있는 개정안 위해

‘당정협의’ 반드시 거쳐야

한국보육교사회의 이윤경 공동대표는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고

투표권도 없는 영유아는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우

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라고 꼬집으면서, “아이들에 대한 보호없이 어

떻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느냐”며 현행 영유아보육법의 개정 필요성을 강

조했다.

한편, 지난해 폐기된 개정안이 또다시 발의되더라도 실효성 측면 등 문제

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 여성특별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번 개정안이 유아교육법안과 경

쟁적으로 상정됐고,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한국보육시설연합, 교육부와 보건

복지부 등 이해집단간의 알력으로 비춰지면서 과정상의 문제가 많았다고 비

판했다(관련기사 참조). 게다가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면서 차등보육제도, 방

과후 보육 등이 삭제되는 등 애초 민간단체와 전문가들의 요구가 퇴색됐다

는 것이다.

또한 정부안이 아닌, 의원 발의로 당정협의를 거치지 않고 추진된 개정안

이었기 때문에 예산 확보가 전혀 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법안이었다는 문

제점도 지적된다. 이에 만약 이번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정부 발의가 아닌

의원 발의로 당정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또다시 상정된다면 공염불에 그치

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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