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한 벌에 수백만 원 하는 옷을 주저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는 이런 소비 행태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속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명품에 ‘샤넬’이 있다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것에는 ‘아르마니’가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옷들에 사족을 못 쓰는가? 그냥 비싼 맛에? 그걸로 남과 나를 구분 짓는 맛에? 하지만 패션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그것도 모르고 입는다면 그야말로 자기 몸뚱아리를 돈으로 발라대는 짓일 뿐이다.
가브리엘 샤넬(일명 코코 샤넬)은 옷으로 세상을 향해 도전했던 사람이다. 오로지 우아함만을 강조한 여성의 옷은 활동성이나 기능성은 철저히 무시했다. 여성은 오로지 남성의 장식에 불과했다. 그런 시대에 샤넬은 과감하게 어깨를 드러내고 정강이를 드러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옷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 입고 다녔다. 샤넬은 의상으로 구습에 도전했다. 그녀는 여성들의 몸을 억압하던 코르셋과 허리받이인 버슬을 버리고 활동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여자들에게 선물했다.
당시 일어났던 전쟁(이전의 크림전쟁과 당시의 제1차 세계대전) 또한 복식에 대한 여성들의 태도를 바꿔놓았다. 그 한복판에 바로 샤넬이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품위와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샤넬을 입지만, 샤넬의 원류는 일종의 ‘톰보이 스타일’이었다. 프랑스어 가르손느(가르송의 여성형)를 따서 ‘가르손느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년 같은 여성’인 톰보이 스타일은 여성의 자유와 능력의 가능성을 예언한 거침없는 시대정신의 표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샤넬수트’는 칼라가 없고 길이가 짧은 재킷과 스커트의 심플한 디자인의 옷이다. 여성의 활동성을 편안하게 극대화하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샤넬의 사상이 만들어낸 옷이다. 억압에 대한 저항과 도전,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게 아니라 넓혀가는 선구적 정신. 그게 바로 샤넬의 정신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아함을 내세우며 돈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표현한다.
남성의 옷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르마니의 옷을 입으면 확실히 옷 태가 나긴 한다. 왜 그럴까? 아르마니 남성 수트의 특징은 매끄럽게 흐르는 어깨선에 있다. 오랫동안 남성들은 근육의 과시에 몰두했다. 남성이 세상을 지배한 게 바로 여성의 경우보다 발달한 근육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삶이 주로 남성의 근육노동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근육은 늘 숭배의 대상이었다(남근 숭배도 그 근본은 근육 숭배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성 정장의 상의 어깨에는 두툼한 패드를 덧대서 떡 벌어진 어깨를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올수록 근육 의존도는 급격히 감소해 왔다. 컴퓨터는 그 결정적 쐐기로 작용했다. 더 이상 남성의 근육은 지배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남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원초적 동경을 조금씩 표현하고 싶어졌다. 바로 ‘메트로섹슈얼’의 출현이다. 아르마니는 바로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했다. 그래서 남성 정장에서 과감하게 어깨 패드를 제거했다. 그랬더니 목에서 어깨를 거쳐 팔까지 흐르는 상의 곡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의 길이도 예전보다 약간 길게 떨궈서 전체적으로 가늘고 매끄러운 느낌을 주는 옷을 만들었다. 남자들도 ‘우아함’이나 ‘날씬함’과 같은 본성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샤넬과 아르마니는 그런 점에서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 태도와 인습, 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억압하고 애써 외면했던 인간 내면의 욕망을 건강하고 정확하게 풀어낸 인물들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비싼 맛에 입는’ 명품이 되었지만, 정작 샤넬과 아르마니 옷들이 지닌 시대정신은 까맣게 모르는 것 같다. 오직 비싼 맛에 샤넬과 아르마니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 옷은 명품이 아니라 단지 사치품에 불과하다(왜 여자옷의 단추는 남자옷과 반대편에 있는지, 등쪽에 단추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생각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