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다 예쁜 여고 동창들의 남미 여행기

60대 중반을 넘긴 여고 동창 15명이 한 달에 한 번 ‘서울엿보기’를 하던 중 남미를 엿보겠다고 작정한 건 만용에 가까웠다. 아직 위로는 연로한 부모님을, 아래로는 어린 손주들을 돌봐야 하니 여행시기는 손주들 방학 때로 정하고 적금도 들었다.

남미는 돈, 시간, 체력 삼박자가 맞는다 해도 쉽게 마음먹을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그래도 브라질 이민자였던 나를 믿고 가보겠다 하니 대원들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중심으로 일정, 경비 등을 조율했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체력이 안 따라주고, 와병 중인 부모님이 걱정되어 도저히 나서기 어렵다는 친구들이 빠지고 남미에 대한 로망을 간직했던 LA에 사는 친구와 두 분의 남편들까지 합류해 17명의 대원으로 남미원정대가 꾸려졌다.

출발 날짜가 다가오면서 황열병 예방주사도 맞고, 고산증 예방약도 준비하고, 날마다 양재천도 걷고, 가끔 인왕산도 오르면서 ‘남미야 기다려! 우리가 간다~’고 외쳤다.

나이 듦은 얼마나 값진 일인가, 또 오늘이라는 하루는 누군가가 소망하는 가장 젊고 가치 있는 날이 아닌가. 여행은 가슴 떨릴 때 떠나야 한다. 다리 떨리는 날이 오기 전에... 지금도 그날의 풍경, 그곳의 사람들, 그때의 마음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건 함께한 친구들이 늘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도 소녀시절의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귀한 친구들 말이다.

행복 끝! 고생 시작? 피할 수 없는 고산증

인천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로 11시간을 날아 오전 9시경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다음 날 오후 비행기로 8시간 20분을 날아 자정이 넘은 시간에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서너 시간 눈 붙이고 다시 리마공항으로 갈 때까지만 해도 대원들은 ‘북미에서 남미가 꽤 멀구나! 역시 아메리카는 대륙이네’라는 정도의 정신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리마에서 1시간 반 걸려 도착한 쿠스코부터는 ‘집 떠난 고생길’이 펼쳐진다. 가이드의 이름이나 얼굴을 익힐 새도 없이 가는 곳마다 바뀌고, 짐도 풀자마자 다시 싸야 하는 여정이 계속됐다. ‘여행은 결정하고 준비하는 동안이 더 기대되고 설렌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공항에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는 길은 겨우 마을버스가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다. 아르마스 광장 중앙 분수대에는 잉카 9대 군주인 ‘파차쿠텍’ 동상이 있다. 이 광장에서 잉카인들은 삶을, 정치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을 가로질러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돌의 형상에 따라 정교하게 짜 맞춰진 돌담 축대가 마치 강력한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하다. 12각돌은 현지인들이 지켜서서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쿠스코의 샌프란시스코 성당, 태양과 황금의 신전, 꼬리칸차, 아르마스 광장, 12각돌, 로레토 거리 등 관광 후 우루밤바로 이동한다.

산소가 희박한 쿠스코보다는 낮은 지대에 위치한 우루밤바에서 묵는 것이 좋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아니라도 쿠스코는 빨리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호텔 로비에는 산소통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도 5분간 마스크를 댔다. 몸도 마음도 산소와 함께 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날이다. 내일 있을 마추픽추 등정을 위해 피곤한 몸을 누인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페루의 상징과도 같은 마추픽추와 안데스의 마스코트 야마(라마)가 잉카의 신비 속으로 초대하듯 마추픽추의 날씨 또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까지 가려면 오얀따이땀보 역에서 기차로 4시간쯤 가서 다시 버스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40분 정도 올라간 다음, 30분쯤 도보 등정을 해야 하는 힘겨운 여정이다. 지방층이 두꺼운 나만 빼고 우리 일행 모두는 잘도 오른다.

마추픽추에서 잉카인들은 산비탈을 계단처럼 깎아 옥수수를 경작하여 넉넉히 먹고 살았다고 한다. 또 구리를 쇠만큼 단단하게 제련해 썼던 고대의 방법은 지금도 풀지 못하고 있단다. 잉카 제국은 겨우 100년여 만에 스페인 군대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지만 그들의 역사 속 문명과 저항에 얽힌 사연들을 집약해 보여주는 잉카 최대 유적이 바로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공중 도시 마추픽추이다.

볼리비아 최대 도시 라파스

쿠스코에서 라파스행 7시4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3.4 행군(3시 기상, 4시 출발)이 불가피해 캄캄한 밤하늘에 영롱한 새벽별과 눈 맞추며 빵 봉지 하나씩 챙겨들고 버스로 두 시간을 달렸다.

라파스는 분지처럼 보이는 넓은 웅덩이 모양의 지형 위에 형성된 도시로 경사지고 좁은 골목길을 미니버스가 다니고 있고, 공중으로 다니는 케이블카(지상철)가 대중교통수단인 점이 특이했다.

라파스의 명소 마녀시장은 경사진 몇 개의 골목에 조성되어 있다. 원주민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초, 부정을 막는 부적 등을 이곳에서 팔기 시작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새 집을 지을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도 가게마다 말린 새끼 라마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있고 또 각종 주술용품과 부적, 말린 토끼, 벌레 등도 많이 보인다. 이 시장에서는 라마 털로 만든 질 좋은 스웨터나 티셔츠 등을 팔기도 한다.

하늘의 거울 우유니 소금사막

다음날 새벽 다시 3.4행군으로 6시15분 우유니행 60인승 비행기에 몸을 싣고 45분 만에 우유니에 도착했다. 호텔에 짐을 맡긴 후 찾아간 기차무덤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칠레에 패한 후 소금수출길이 막히고 광산이 쇠퇴하자 은과 광물들을 실어나르던 기차들을 버린 곳이다. 그러나 기찻길은 아직도 꼴차니에서 알젠틴 국경까지 일주일에 두 번 운행하는 기차가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호수의 소금물을 맘껏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는 염평선에 해 떨어지는 썬셋 구경! 지평선과 수평선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다.

사막을 달려가던 가이드가 소금사막 정중앙에 솟아있는 섬으로 안내한다. 물고기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물고기섬은 다른 곳에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표지판을 보니 이곳은 잉카후아시(잉카인의 집)라고 써있다. 이 섬에는 1년에 1cm씩 자라 천년쯤 됐을 꺼라는, 10m가 넘는 선인장도 있다. 수많은 선인장이 자생하고 있는 바위섬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보았다. 우유니 사막을 사방팔방, 360도로 볼 수 있는 파노라마가 정말 장관이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과 달의 계곡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칠레 아타카마사막은 최근 들어 드라마 ‘별.. 그대’를 통해 알려진 곳이다. 극중에서 도민준이 천송이의 동생 천윤재에게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며 건넨 사진을 통해 공개돼 더욱 눈길을 끌고 있는 곳.

비와 안개 속에서 만난 예수상

서울을 떠난 지 열흘 째, 코르코바도 언덕 위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예수상을 만나러 갔다.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힘껏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에 위치한 38m높이의 거대 예수상! 세찬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우뚝 서있는 경이로운 높이의 예수상은 원래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브라질로 옮겨졌다고 한다. 1932년에 제작된 이 예수상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 됐다. 전날 비 때문에 오르지 못했던 빵산(뻥쟈수까)과 코파카바나, ‘이빠네마의 여인(Garota de Ipanema)’이라는 보사노바 음악이 탄생한 이빠네마 해변 관광을 한 후 이과수로 향했다.

‘큰 물’이라는 뜻의 이과수

이과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국 국경을 끼고 있는 세계최대의 폭포! 아니, 폭포라고 하기엔 다른 나라 폭포들이 너무 초라해져서 이과수는 그냥 이과수라고 해야 한다나? 먼저 아르헨티나 쪽 ‘악마의 목구멍’을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역에서 내려 1km쯤 강 위로 낸 다리를 걸어야 하는데 햇볕이 엄청 뜨겁다. 양산은 필수다. 한참을 걷다보면 “내가 이과수다!”라고 외치듯 엄청난 굉음이 들린다. 깊이를 알 수없는 블랙홀처럼 수많은 물을 빨아들이는 커다란 구멍에서 나는 소리다.

다리 옆에는 “여기는 우리 땅!” 아르헨티나 국기가 펼럭이고 있고 쌍 무지개가 우리를 반긴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사진도 실컷 찍고 돌아나왔다. 이과수에서는 사파리투어와 브라질 쪽 폭포 아래에서 물벼락을 즐기는 보트투어를 해야 하고, 기왕이면 헬리콥터투어도 하면 좋다. 또 이과수에서는 나비가 물을 마시는 모습도, 꽈치라는 귀여운 동물들 무리도 볼 수 있다. 이과수는 ‘큰물’이기도 하지만 생태계가 살아있는 거대한 ‘자연학습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