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영남제분 청부살인사건 피해자인 고 하지혜씨의 오빠 진영씨가 여성신문과 인터뷰 도중 가해자 윤길자씨가 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영남제분 청부살인사건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2년 3월 영남제분(현 한탑) 류원기 전 회장 부인 윤길자씨가 이화여대 법학과 4학년 하지혜씨(당시 22세)를 납치, 살해했다. 하씨가 이종사촌 오빠이자 자신의 판사 사위인 김모씨와 불륜 관계라는 의심 끝에 살인을 청부한 것이다. 하씨는 실종된 지 열흘 만에 하남시 검단산에서 공기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지 14년이 흘렀지만 단란했던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 어머니 설씨는 외동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충격을 못 견뎌하다 지난 2월 딸 곁으로 갔다. 불과 예순넷의 나이였다.
그리고 이제 하씨의 친오빠는 거리에 있다. 하진영(39)씨.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하남 마루공원에 봉안한 후 6일 만에 진영씨는 1인 시위에 나섰다. 윤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받아 감형 없는 무기징역형을 확정 받고 복역하던 중 허위 진단서로 형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6년간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실 등에서 호화 생활을 이어와 국민적 공분을 산 흉악범이다. 그런데 재수감된 윤씨가 언젠부턴가 모범수들이 취업‧창업을 통해 새 삶을 찾도록 돕는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생활한다니 억울함에 온몸이 떨려왔다.
그는 상복을 입은 채 2월 29일 서울고등법원을 시작으로 3월 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3일 화성직업훈련교도소, 4일 부산 영남제분을 돌며 시위를 벌인 후 1만 명의 시민들로부터 국민감사청구 서명도 받았다.
진영씨와 인터뷰한 4일은 마침 하씨의 생일이었다. 그날 진영씨가 운영 중인 페이스북 페이지 ‘사모님, 지금도 웃고 있나요’(www.facebook.com/hajihye1980)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지혜야, 내 동생 지혜야. 생일 축하한다. 엄마가 미역국 끓여 주셨지?”
이틀 전 봉은사에서 어머니 49재를 마친 진영씨는 검은색 지갑을 꺼내더니 기자에게 동생의 학생증, 어머니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보여줬다. “지난 14년간 늘 지혜 학생증을 품에 넣고 다녔어요. 그런 제가 어머니 주민등록증까지 넣고 다니는 처지가 됐네요….”
살인사건이 일어나던 해 진영씨는 경희대 대학원 호텔경영학과에 다니던 평범한 스물다섯 남자였다. 14년 뒤 그는 거리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호소하며 사법정의를 부르짖는 1인시위자가 됐다. 하씨가 비명횡사한 후 해외로 도피한 범인들이 검거될 때만 해도 그는 법의 단죄가 이뤄질 걸로 믿었다. 꾸역꾸역 인내하면 일상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강력범죄 피해자 가족의 파괴된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남제분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데 한 직원이 ‘죽여 버리겠다’ ‘부모관리도 못한 새끼’라고 폭언을 하더군요. 어머니에게 ‘자식 관리 제대로 못해 (지혜가) 죽은 거 아니냐’고 비하할 땐 진짜 참기 힘들었어요.” 반면 국민감사청구 서명운동을 시작한 이대에선 학생들이 마음으로 진영씨를 응원해줬다. 이틀 만에 수천명치의 서명을 받아줬고 교내방송도 해줬다. “수녀님부터 주부, 대학교수, 의사 등 많은 시민들이 대신 서명을 받아 보내줬어요. 300명 이상 서명을 받으면 국민감사청구를 할 수 있는데 1만 명을 훌쩍 넘겼죠. 누가 봐도 뻔한데 3년 전과 달라진 게 없으니까 시민들이 같이 분노해준 거죠.”
살인사건이 벌어진 2002년 어머니는 자살기도를 세 차례나 했다. 사업을 그만둔 아버지는 힘겨운 법정싸움 끝에 건강이 나빠지자 강원도 평창으로 잠시 삶터를 옮겼다. 진영씨는 어머니를 위로하러 아내와 1남1녀를 데리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하남 집으로 찾아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에게 “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진영씨는 “저희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겠느냐. 하남 집에는 지혜가 쓰던 방도 그대로 있다”며 씁쓸해했다. 지난 겨울 13년 만에 동생 사망신고를 한 후 첫 제사를 지낸 진영씨는 “이제는 한집에 모여 살자”고 부모님과 약속하고 가족여행도 가기로 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그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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