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한 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80대 초반의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고 오셔서 한숨을 여러 번 내쉬고 난 뒤, 우울하고 힘들다고 하셨다. 바깥 어르신은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자식 하나는 외국에 가서 살고, 남은 한 자식은 사는 것이 힘든지 연락을 끊은 지 오래라고 했다. 5년을 혼자 살았는데 이제는 너무 힘들고 지쳤다고 하신다. 자꾸 아프고, 부대끼는데 어디 의지할 곳이 없다 하신다. 잠이 도통 오질 않아서 물어물어 왔다고 하시는데, 할머니의 이야기에는 깊숙이 외로움과 두려움과 지쳐 있음이 배어 있었다.
오후에는 80대 중반 어르신이 오셨다. 부인의 약을 지으러 오셨다. 부인은 치매가 악화돼 요양원에 가 계시고 홀로 지내고 계신다고 한다. “할망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빨리 가기만 바란다”고 하시면서 본인도 우울하고 지쳐서 죽고 싶다고 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은 스스로도 살기 힘들고 어려워서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단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도 외로움과 두려움, 지쳐 있음이 깊게 배어 있었다.
진료를 끝내기 직전 80대 후반의 할머니가 오셨다. 며느리가 모시고 왔는데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 정신과를 가보라고 해서 모셔왔다. 그래도 따라온 며느리가 있어서 한편의 안도감을 갖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10년을 혼자 사시다가 큰 아들 근처로 집을 얻어 왔는데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고 한다.
아들집 가까이 오긴 했지만 보는 일은 가까운 거리가 품게 하는 기대만큼 자주 보지를 못했고, 아파트가 아닌 빌라의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서 더 외출을 안 하고 혼자가 되었다고 하신다. 답답하고 우울하고 사람이 그리워서 우울증이 도졌다고 하신다. 아들 곁에 살지만 예전 혼자 사실 때보다 더 외로워진 것은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고, 관절이 좋지 않은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빌라라 나가지도 못해서 더 외롭다고 하신다. 며느리는 듣기 불편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랑보다는 의무감이 앞선다는 태도가 전해져 왔다. 이 할머니의 이야기에도 외로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독거노인 200만 시대가 코앞이다. 가까운 일본의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도 하고 독거노인 종합지원센터도 생기는 등 홀로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한 서비스가 늘고 있지만 이미 수없이 존재하는 독거노인의 한숨보다 못한 상태다. 밝고 건강하고 사회적 지지가 좋은 어르신들을 위한 노인복지관과 노인정 중심의 서비스는 이렇게 아프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어르신들에까지 활기를 몰고 오지는 못한다.
깨어진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 자본이 바닥난, 나 하나 감당하며 살아내기 벅찬 사회에서의 노인들은 학대받는 아이들만큼이나 외롭고 힘겹고 지쳐 있다. 주변의 자원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이동할 방법이 어렵고, 방법을 알아도 함께 할 사람도 없다. 기다리는 죽음은 생각처럼 오질 않고, 부질없이 붙어 있는 생명을 탓하며 세상에 쓸데없이 축을 내고 있다는 이 우울한 솔로 노인들에게 벗은 낭만조차 되지 않는다.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살고,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식이 되어주고, 사회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연대감을 높여주는 기적적인 사회 변화가 곧 올 수 있을까? 홀로 사는 부모를 자주 찾지 못하고 있는 지독히 바쁜 일중독 자식, 공부중독 손주, 자녀중독 며느리들은 언제쯤 각자의 중독에서 사회적으로 해방돼 편한 마음으로 부모를 만나러 다닐 수 있을까? 쓸쓸하고 또 쓸쓸한 이 노인들의 서글픈 죽음을 향한 행진을 멈추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장치와 활동을 어떻게 작동하게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아쉽게도 우리 어르신들은 자신을 위한 투표마저도 못하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정녕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