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31일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해넘이를 했다. 해마다 해넘이를 하던 장소는 몇 년 사이 펜션과 리조트들이 들어서더니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서둘러 동막해수욕장까지 갔다. 힘겨웠던 2015년의 마지막 해를 보내는 마음에 한 톨의 미련, 아쉬움도 없었다. 간절히 새해, 새날을 바랐다. 그러나 2016년 1월 1일은, 2015년 12월 31일과 다르리라는 생각은 사실 환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과 힘찬 각오로 시작한 2016년 벽두에 공부방 식구들은 더 큰 일을 당했다. 우리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던 오랜 친구이자 식구를 잃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되겠다던 꿈을 이룬 멋진 삼촌이었다. 공부방 후배들에게는 본받고 싶은 선배였고, 가족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자랑스럽고 대견한 아이였다.
그는 새해 첫 조업을 나가 사고를 당한 동료와 아버지를 구하려다 세상을 떠났다. 공동체라서, 함께라서 슬픔을 나눌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별이 쉬울 리 없다. 그를 떠나보내며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되새겼다. 잊지 않겠다는 말이 더 절실해졌다. 그리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기 위해 서로의 손을 더 단단히 잡고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1월 8일, 용산 남일당 참사로 남편을 잃은 유영숙씨의 순화동 철거투쟁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지난해 12월 30일에는 7년 동안 한국사회 노동 문제의 상징이었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아직도 고공 농성과 노숙 농성 중인 다른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처럼, 용산의 유가족처럼 질기고 질긴 싸움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순화동 철거투쟁이 끝났다는 말에 공부방 아이들이 물었다. “그럼 콜트콜텍 아저씨들은요?” 아이들은 몇 년 전부터 공부방 성탄잔치에 와서 공연을 해주던 콜트콜택 아저씨들이 이번 성탄잔치 때는 여의도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바람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공부방 아이들은 계속 질문했다. 이 사회가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무능한지, 왜 사람들은 그것에 제대로 분노하지 않는지, 왜 진실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데 왜 늘 가난하고 힘든지. 그때마다 당혹스럽고 부끄러웠지만 변명을 하거나 에둘러 말하지는 않았다.
청소년인 그 아이들은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노력과 연대가 계속되지 않으면 자신들의 5년 뒤, 10년 뒤, 15년 뒤도 똑 같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순화동 철거민들이 끝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고 질기게 싸우고 버텼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 싸움에 함께 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가난하고 뒷배도 없다. 그래서 더 분명하게 알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들의 손을 맞잡아야 하고, 작고 힘없는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2016년 역시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두렵지는 않다. 슬픔과 절망을 나누어 짊어지고, 희망은 더 크게 할 ‘우리’로 살아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