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조문객이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친 조문객이 분향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젊은 시절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살던 그 시절에 정치인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 동네에 설렁탕집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봉희설렁탕집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 집은 단골집이어서 자주 오신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우연히 그 집에서 비서관들과 설렁탕을 드시는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다. 물론 그때는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유력한 정치인이었다. 그 비서관 중에 한 사람이 날 알아보고 인사를 했고 나도 그쪽으로 인사를 했는데 그 미래의 대통령이 날 보고 말했다. 아마도 시인이라고 비서관이 말했을 것이다.

“설렁탕 한 그릇 드시이소. 이 설렁탕 한 그릇이면 시가 더 잘 씌어질 낍니다.”

나는 그날 친구와 둘이서 미래의 대통령에게서 설렁탕을 대접받았다. 두 사람분의 설렁탕 값을 그쪽에서 계산했다. 꼭 설렁탕 한 그릇 때문이겠는가. 그때 잠시 뵈었던 그분은 우선 한국적 정이 느껴졌고, 가식이 전혀 안 보이며,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 같고, 신뢰가 가는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두 번째로 그분을 만난 것은 대통령이 되어 문화인들을 초청하는 자리에서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별로 맛이 없고 불어 있는 국수를 먹어 나중에 삼청동으로 내려와 다시 점심을 사 먹은 기억이 있다. 봉희설렁탕은 소문에 청와대로 배달도 되었다고도 했다. 서민적인 것은 좋지만 오랜만에 청와대에 가서는 좀 잘 먹어야 하는 불만도 있었지만 정말 국수와 설렁탕이 맛있어서 남들에게도 먹이고 싶었던 게 그분의 진심이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세 번째로 그분을 만난 것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나와 동향인 고 김동영 의원의 10주기 행사에서 내가 조시를 읽었을 때다. 사실 그때도 건강이 아주 좋아 보이진 않았었다. 시가 참 좋다고 해서 내가 말했었다.

“언젠가 사 주신 설렁탕 때문일 겁니다.”

그때 웃으면서 다시 가자고 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좋아한 것이다. 멋으로, 서민적으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을 청와대에 오는 분들께 대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비서였다면 오시는 분들에게 좀 더 맛있는 걸 대접하라고 하겠지만 아마도 그분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게 맛있는 거 아이가!”

정치인으로는 너무 환하게 알고 있는 분이지만 인간적으로 정이 많았던 한국적인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업적을 생각해 가면을 사용하는 트릭이 전혀 없고 도저히 그럴수도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서 처음 국무회의를 봉희설렁탕집에서 했으니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때도 말이 많았다. 무슨 설렁탕집이냐고? 그러나 그분은 무슨 트릭이 아니라 국무위원들에게 정말 설렁탕을 먹이고 싶었고, 그것은 진한 설렁탕 국물처럼 소신을 가진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었다.

생존 시 김동영 의원이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자주 말했었다. 상관이니까, 정치인이니까 그렇게 흘려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설렁탕을 드실 수 없는 곳으로 가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렇게 걱정하시던 대한민국이 좀 더 통합의 길로, 그분이 마지막에도 종이 위에 전력을 다해 필사한 ‘화합’의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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