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 표지
사노 요코 『죽는 게 뭐라고』 표지

죽음은 삶 일부이자 자연스러운 것

막연한 두려움 떨쳐내는 유쾌함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지만, 대개의 사람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한다. 죽음이 우리 주변을 항상 어슬렁거리는데도, 제아무리 ‘촉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자기 죽음만은 남의 일처럼 여긴다. ‘메멘토 모리’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죽음을 애써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사실 두렵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지식이 없으니 두려울 수밖에. 두려움이 외면을 만든 것이다.

일본 작가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는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두려움만은 확실히 떨쳐내게 하는 책이다.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이라는 부제답게, 죽음에 대한 객관적 혹은 주관적 사유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한다. 일흔 즈음에 암이 재발하자 사노 요코는 항암제를 거부했다.

항암제를 쓰지 않으면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불쾌한 1년”을 보내겠지만, 항암제로 연명하더라도 “불쾌한 1년을 보내야 한다면 그편이 더 고통스럽다. 아까운 짓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말한다. “암 따위로 으스대지 마시길. 훨씬 고통스러운 병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류머티즘이나 진행성근위축증도 있고, 죽을 때까지 인공 투석을 해야 하는 병도 있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백영옥의 말마따나 “암은 앎”이 될 수도 있다.

사노 요코가 가진 죽음에 대한 단단한 생각은 혼자만의 힘으로 터득한 것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 이를테면 그가 암에 대해 가끔 상담하는 의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죽음을 바라보는 게 일상이라는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죽어가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좋아, 나는 훌륭하게 죽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뜻을 세워서 후회하지 않고 깨끗하게 죽고 싶어요.” 어느 누가 훌륭한 죽음, 깨끗한 죽음을 마다할까마는 대개의 사람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 때문에 이런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다. 당연히 “개개인의 도덕관에서 비롯된 가치관”을 고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만난 할머니도 도움이 되었다. 53년 동안 남편의 학대에 시달렸던 할머니는 “머리채를 질질 끌고 다녀서 뼈가 부러진 적도 몇 번 있었다”고 사노 요코에게 처음으로 고백했다. 바람 피우는 것도 예사였던 남편은 아내의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은 냉혈한이었다. 다른 선택은 생각도 못 해 봤다는 할머니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일생을 담담히 받아냈을 뿐이다. 사노 요코는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삶을 무던히 견디며, 어쩌면 그것보다 더 무던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어른들일 것이다.

『죽는 게 뭐라고』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유쾌하다. 암 투병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죽음이 삶의 일부이자 자연스러운 것임을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 『사는 게 뭐라고』와 함께 읽으면 더더욱 맛깔스러운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 아니 철학을 만날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