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의 첫날』 / 비르지니 그리말디 / 열림원
『남은 생의 첫날』 / 비르지니 그리말디 / 열림원

장동석의 여성·책읽기 / 『남은 생의 첫날』

두 여자는 각자의 삶에 만족했다. 별다른 삶의 굴곡이 없었고, 사랑도 제법 순탄했다. 마흔, 예순이라는 나이가 약점이라면 약점일 뿐. 한 여자는 지금의 몸매와는 달리 뚱뚱한 몸매 때문에 평생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았고, 궁극에는 외면마저 당했다. 그래도 나이만큼은 빛나는 스물다섯이었다. 『남은 생의 첫날』(비르지니 그리말디, 열림원)은 세 여자가 우연히 여행을 함께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의 상처 때문이지만, 웃음이 묻어나고 때론 감동적이니 다행이랄까.

마흔의 마리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소년 티를 이제 막 벗은, 록그룹 보컬이 꿈이었던 남자와 만나 아이를 갖고 결혼했다. 대학생 두 딸은 보석보다 아름답다. 하지만 첫사랑과의 사랑은 차츰 식어가고, 여자는 고심 끝에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가 막 육지를 박차고 오를 때 한 여자가 마리의 허벅지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한다. 예순둘의 안느다.

안느는 도미니크라는 남자와 40년을 살았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깊었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았고, 장애물이 생기면 대화로 해결할 줄 아는 나름 괜찮은 관계였다. 하지만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서 도미니크는 밤낮으로 일에만 몰두했고, 결국 떠났다. 매일 아침 속삭이던 사랑의 밀어는 이제 기억 속에서도 희미하다.

카밀은 허풍기가 있는 여자였다. 어떤 남자라도 사냥(?)할 수 있다고 믿는, 아니 그렇게 큰소리치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허풍은 아픔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이었다. 안느와 마리를 만나기 2년 전까지만 해도 카밀은 뚱뚱했다. “몸에 붙어 있는 지방 덩어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카밀은 자신의 장점, 즉 재미있고, 친절하고, 교양 있고, 성실하고, 활달하고, 활동적이며, 섬세한 면을 내세웠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를 들면 저녁 파티에서 느린 춤곡이 나올 때면 구석 자리를 차지해야만 했다. 나름 아름다운 지금의 몸은 혹독한 다이어트와 성형 수술의 결과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세 여자의 여행은 그야말로 자유롭다.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는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까지 자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혼했을지라도, 헤어졌을지라도, 관심을 받지 못할지라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유만은 충만하다. 그리고 세 여자는 결심한다. “색도 향기도 없이 지나간 날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남은 생의 첫날’만을 살기로 말이다.

고독할 줄로만 알았던 이들의 여행은 함께 웃고 울며 100일을 이어가고,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삶의 자리로 다시금 돌아온다.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 아니던가. 물론 돌아와 마주한 일상이 다시 지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고 돌아온 내공이 있으니 그 지옥은 아마도 다른 지옥일 것이다. 색도 향기도 없이 지나간 날들이 아닌 남은 생의 첫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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