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공계는 ‘여성의 무덤’이 됐나
왜 이공계는 ‘여성의 무덤’이 됐나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5.09.09 13:38
  • 수정 2017-11-15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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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럴딘 리치먼드(Geraldine L. Richmond) 미국과학진흥회(AAAS) 회장

보이지 않는 여성 과학자들… 사회구조적 문제 심각

과학기술 분야 여성 진출, 연구·개발의 질과 직결

한국 여성, 젠더 혁신 이끌려면 ‘질문하는 힘’ 길러야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제랄딘 리치몬드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공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제랄딘 리치몬드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회장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제공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는 ‘여성의 무덤’이라 불린다. 미국 하버드대가 발간하는 경영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3월호에 따르면,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는 여성이 1991년부터 감소하고 있다. 기술산업 분야에 진입한 여성의 절반가량(41%)은 ‘도중 하차’한다. 남성은 17%만이 업계를 떠난다. 이공계 여성들은 왜,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어떤 이들은 실력 있는 여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자질을 갖추게 되면 해결될 문제라면서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제럴딘 리치먼드(61) 미국과학진흥회(AAAS) 회장은 “성차별과 사회적 편견이야말로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을 가로막고, 이들을 무대에서 일찍 퇴장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리치먼드 회장은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를 발간하는 세계 최대 과학기술전문가협회의 수장이다. 그는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연구·교육 자문 기구와 미국 과학 특사(U.S. Science Envoy) 소속이며, 국제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단체 ‘코치’(COACh)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지난 8월 26~28일 서울에서 열린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서밋’(이하 젠더서밋)에 참석한 그는 “많은 여성이 과학기술 연구와 혁신을 선도하고 있지만, 젠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지원은 부족하다”며 “구체적이고 전 지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 분야 젠더혁신을 위해 개최된 올해 젠더서밋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로 한국에서 열렸다. 리치먼드 회장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행보에 대해 “놀랍고 반갑다”고 말했다. “위계적·수직적 한국 사회 특성상 젠더혁신은 쉽지 않은 도전”이라면서도 “젠더 서밋을 개최할 만큼 과학기술 젠더 혁신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세계와 협력하려 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젠더혁신을 주도해 나갈 한국 여성들에게도 조언과 격려를 전했다. “우리 세대에는 여성이 야망을 품는 일 자체가 어려웠죠. 지금은 얼마나 많은 여성이 변화의 중심에 서 있나요. 여성들은 더 당당해져도 됩니다.”

 

지난 1월 태국에서 과학도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는 제랄딘 리치몬드 회장 ⓒUSAID
지난 1월 태국에서 과학도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는 제랄딘 리치몬드 회장 ⓒUSAID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률이 낮다. 

“그렇다. 젠더서밋을 제외한 다른 과학 콘퍼런스나 포럼에 가면 여성 과학자를 찾기조차 어렵다. 다 어디 갔을까. 인도의 여성 과학자들은 온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과 친지를 위해 요리를 한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여성 과학자들은 결혼과 출산 후 복직에 어려움을 겪는다.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고위급으로 가면 여성 비중은 더 낮아진다. ‘젠더 선진국’ 북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현실은 어떤가. 

“미국 과학기술계의 여성 비율도 무척 낮다. 한동안 이를 ‘파이프라인 문제’(pipeline problem)라고 불렀다.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될 실력 있는 여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더 많은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학위를 취득하며 진로를 탐색하고 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을까? 그렇지 않다. 원인은 여성이 아니라 인력 공급 파이프에 숭숭 뚫린 구멍이다. 성적 차별·편견 등 구조적 문제로 인해 생긴 이 구멍으로 여성들이 떨어져 나간다.”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진출은 왜 중요한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질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성비의 과학자들은 다양한 문제 접근 방식과 해결 전략을 내놓을 수 있으므로 연구에 질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AAAS는 여성을 포함해 자국에서 적절한 지원과 기회를 얻지 못한 과학자들이 국제 협력을 통해 새롭고 창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각국 여성 과학자들 간 네트워킹을 주선하고,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연구 진흥에도 힘써왔다. 누구나 성별·인종·출신을 떠나 평등한 위치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다.”

-과학기술 분야 남녀 동수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좀 더 고민해볼 문제다. 경험이 부족한 여성에게까지 자리를 할당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성평등 교육이 보편화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여성보다 남성의 지시를 따르는 데 더 익숙하다. 이미 존재하는 편견과 권위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꼭 ‘여성 50%’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과학 공동체의 20~30%만 여성이 차지해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성평등의 가치를 이해하는 남성의 비율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젊은 여성 과학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질문을 두려워하지 마라. 과학의 출발점은 질문이다. 질문하지 않으면 과학을 잘할 수 없다. 물론 한국처럼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똑똑한 한국 여성들, 남성들조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교수나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러나 과학자라면, 특히 여성이라면 ‘질문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질문의 결과가 부정적일 것이라고 예단하지 마라. 정중하고 정당한 문제 제기는 훌륭한 토론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는다. 남성들도 질문받는 일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를 마케팅할 줄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남들이 자신의 성과를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이걸 해냈다’고 알리라고 가르친다. 스스로의 능력과 성과를 정당하게 어필하라는 것이다. ‘잘난 척’(bragging)이 아니다. 남성들은 늘 ‘나 잘났소’ 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그런 면을 배워서 당당해지면 또 어떤가.(웃음) 어렵지 않다. 당신의 성과에 대해 칭찬을 받으면 ‘뭘요. 운이 좋았는걸요’ 대신 ‘감사하다’고 답하는 습관부터 들이자.

당신의 일도 삶도 모두 소중하며, 이 사실을 이해하는 파트너를 만나라. 내 남편은 내게 최고의 지지자가 돼 줬다. 내가 자신보다 더 수입이 많다고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최근 부성과 가사 분담에 관심을 기울이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데 좋은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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