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대상으로 낙인찍힌 여성

‘혐오 사회’ 맨얼굴 드러내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 혐오 현상은 ‘아니, 왜 오바마는 흑인 주제에 지금 목화솜을 안 따고 있는 거야? 쟤가 있을 곳은 목화 농장이야. 왜 백악관에 있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군. 참을 수 없어’ 이런 인식 수준에 있는 이들 때문이다. 이들을 어떻게 계몽한단 말인가.”-115쪽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에서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윤보라 외/ 현실문화/ 1만4000원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윤보라 외/ 현실문화/ 1만4000원

주된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여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현실문화)는 최근 인터넷과 방송을 매개로 촉발된 혐오 전쟁부터, 역차별 논쟁,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혐오, 사회 지배적인 혐오를 내재한 자기혐오 등 다양한 혐오를 말한다.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혐오의 대상은 누구인지, 혐오라는 강렬한 감정의 기능과 효과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혐오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여성 혐오’를 입구 삼아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혐오 사회’의 민낯이다.

2015년 1월 대한민국의 한 소년이 돌연 이슬람 무장단체로 향하며 ‘지금은 남성이 차별받는 시대’이고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들은 테러조직에 가담할 만큼 싫다는 ‘페미니스트’란 도대체 무엇인지 질문하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논의의 구도는 자연스레 페미니즘은 무엇이 문제인가, 즉 페미니즘/페미니스트의 해악을 찾는 방향으로 흘렀다. 이즈음부터 ‘여성 혐오’라는 말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해석하는 중요한 틀 중 하나가 됐다.

“남성은 자신의 나약함 혹은 자신이 거세된 존재임을 환상의 베일로 가려주어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르시시즘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메두사처럼 그런 환상의 베일을 찢음으로써 상처 입히는 존재가 여성이다. 이아손이 눈물 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메데이아를 혐오하는 것처럼 말이다.”-83쪽 임옥희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에서 

여섯 명의 필자는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혐오’라는 표정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여섯 가지 목소리로 들려준다. 여성학 연구자 윤보라는 ‘김치녀와 벌거벗은 임금님들: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에서 여성혐오 현상을 둘러싼 인식 틀의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이 현상이 여성에 대한 몇 가지 부정적 유형에 여성을 자의적으로 끼워 넣는 작업임을 밝힌다.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을 연구해온 임옥희는 ‘주체화, 호러, 재마법화’에서 글로벌 신자유주의 시대에 젠더 무의식이 어떤 과정과 변형을 거치는지를 살피며, 혐오를 끔찍하리만치 강력한 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읽어내고, 여성이 가진 바로 그 강력한 힘에서 혐오를 동결시킬 마법적인 힘을 기대해볼 수 있다고 한다.

여성학, 평화학을 연구하는 ‘메타 젠더주의자’ 정희진은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에서 여성에게 언어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타자로서 여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의 경험과 역사가 지식으로 공유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숙지할 것을 당부한다.

문화연구자 시우는 ‘다른 목소리로: 남성 피해자론 및 역차별 주장 분석하기’에서 연세대 ‘논지당 사건’에서 나타난 남성 역차별 주장과 피해자론을 파고들며, 남성 간 차이를 은폐하는 남성 역차별 담론의 숨은 기능을 비판적으로 폭로하고, 젠더 정치학과 페미니즘의 방향성을 묻는다.

퀴어 연구자인 루인은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트랜스젠더퀴어, 바이섹슈얼 그리고 혐오 아카이브’에서 혐오가 어떤 주체를 만들어내는지에 초점을 두며, 혐오를 자기와 세계가 만나는 방식의 분석 틀로 삼아보자고 제안한다. 민감하고 복잡한 혐오 양상을 독해하는 이 글은 우리 모두를 혐오의 당사자로 소환한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나라는 ‘누군가의 삶에 반대한다?: 성소수자 운동이 마주한 혐오의 정치세력화’에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혐오 세력과 싸워오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의 동학을 추적하며, 약자를 속죄양 삼는 혐오 정치를 비판하는 동시에, 여성, 이주자, 성소수자 등 손쉬운 먹잇감을 찾는 다양한 혐오에 대항하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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