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문가 3인의 추천작 - 황미요조 영화평론가
1. 환상 속의 사랑 (Images, 로버트 알트만, 1972)
런던에 거주하는 가정주부이자 동화 작가인 캐서린은 어느 날 밤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의 정체 모를 여성은 캐서린의 남편 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 캐서린은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하고, 휴는 그녀를 외딴 교외의 별장에 데려가 쉬도록 한다. 그러나 캐서린은 점점 환각을 보며 환각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캐서린 역의 수잔나 요크는 이 영화로 1972년 제25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가부장제 부르주아 가정 안에서 억눌린 여성의 욕망을 표현하고 그 가정을 해체 시키는 힘은 비언어적, 초현실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까. 여성의 공포와 섹슈얼리티, 판타지, 욕망에 대한 실험적인 스릴러 영화.
2. 월하의 공동묘지 (권철휘, 1967)
달빛이 가득한 공동묘지. 원한을 품고 죽은 월향의 무덤이 열리고 원혼이 살아난다. 월향은 자신을 비참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데 이어 자기 아들마저 죽이려는 이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한국공포 영화에서 반복 등장하는 억울한 며느리, 한 많은 여동생 원귀가 탈식민적 상상력과 결합한다. 무엇보다 원초적으로 무섭다.
3. 캐리 (Carrie, 브라이언 드 팔마, 1967)
여고생 캐리는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 캐리는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의 순결 강요와 친구들의 따돌림 속에서 외롭게 생활한다. 어느 날 파티에 초대받은 캐리는 친구들의 음모로 돼지 피를 뒤집어쓰고 만다. 웃음거리가 된 캐리는 복수를 시작한다.
공포와 두려움으로서 여성성을 그린 영화. 비천하고 오염된 것, 불순물, 찌꺼기처럼 정상인들의 세계를 어지럽히고 위협하는 ‘비체(abject)’로서 재현되는 여성성의 역설.
4. 서스페리아 (Suspiria, 다리오 아르젠토, 1977)
독일의 유명한 발레 학교로 유학 온 미국 소녀 수지는 도착한 날 밤, 겁에 질려 학교에서 도망쳐 나오는 학생을 목격하고 이튿날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수지는 학교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이상한 선생과 학생들, 밤마다 기숙사에 울려 퍼지는 기이한 소리들 탓에 애를 먹는다. 지방 전설로 내려오는 마녀 이야기와 살인 사건이 관련 있으리라고 추측하던 수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흑마술의 표적이 된다.
이탈리아 공포 영화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대표작이다. 기숙학교 소녀 공포물의 원조.
5. 스릴러 (Thriller, 샐리 포터, 1979)
재봉사 미미는 오페라의 막이 내리면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에 의문을 품는다. 스스로 이 수수께끼를 하나둘 풀어가던 중, 오페라 속 다른 여성 인물들과 자신의 관계를 훼방 놓는 이분법의 존재를 알게 된다. 푸치니의 ‘라 보엠’, 히치콕의 ‘사이코’ 등 작품들 속 여성의 희생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던지는 미스터리 공포영화.
모든 대중 영화, 특히 여성이 희생하는 로맨스가 줄거리에 포함된 영화는 사실 여성에게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어 묻고 또 되물어야 하는 스릴러 영화다. 샐리 포터 감독은 오페라 ‘라 보엠’의 구조를 여성의 입장에서 스릴러 영화로 해석하고 해체, 재구성했다. 장르적 스릴러나 공포 영화라기보다는 여성주의적 실험영화이지만, 반쯤은 농담으로, 반쯤은 매우 진지하게 추천.
6. 에일리언 3 (Alien 3, 데이비드 핀처, 1992)
두 명의 생존자와 함께 타임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던 주인공 리플리. 그러나 에일리언과의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비상착륙한 혹성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중 급기야 자신의 몸에도 에일리언이 까놓은 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성성, 모성에 대한 수많은 페미니스트적 찬반 논의를 낳은 에일리언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7. 하룻 밤의 남편 (คืนไร้เงา, 핌파카 토위라, 2004)
사이팡의 남편은 어느 날 수상한 전화를 받은 후 홀연히 사라진다. 사이팡은 남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시댁에 연락해 보지만 식구들은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하고, 시동생 찻차이는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사이팡은 남편을 찾아 나섰다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대중장르 공포영화와 초자연적 요소를 젠더적으로 재해석했다. 핌파카 토위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같은 테마의 단편 ‘Mae Nak’ (1997)보다 밀도가 약간 떨어지지만, 흥미로운 공포영화.
8. 절규 (叫, 구로사와 기요시, 2006)
형사 요시오카는 붉은 드레스 여인의 살해사건을 조사하면서 귀신을 보게 된다. “나는 죽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죽어줬으면 해요” 라고 귀신은 말하고, 요시오카는 자신과 관련한 믿지 못할 사실들을 하나 둘 알아가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도 악의는, 원귀의 근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공포의 근원을 일본 현대 역사에서, 그리고 젠더적으로 추적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영화.
9. 독립소녀홍련대 (獨立少女紅蓮隊, 아사토 마리, 2007)
일본 남부의 섬 기숙학교 소녀들은 섬 독립을 위해 인간 병기로 은밀히 키워진다. 이들이 다니는 기숙학교는 가수·댄서 양성 아카데미의 간판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중앙 정부에 대항해 섬의 독립을 도모하는 여전사 훈련소 ‘오리온 · 댄서 아카데미’. 유키를 포함한 네 소녀는 도쿄에서 가수, 배우의 가면을 쓴 채 스파이 활동을 벌인다.
공포영화를 주로 만들어 온 일본 여성 감독 아사토 마리(‘령: 저주 받은 사진’(2014))의 장편 데뷔작. 스릴러 보다는 액션의 요소가 강하지만 오키나와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 설정과 일본대중문화 인용이 인상적이다.
10.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린 램지, 2011)
자유롭게 살고 있던 에바에게는 골칫덩이 아들 케빈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이의 심한 반항은 그녀를 점점 지치게 한다.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엄마를 괴롭히던 케빈은 청소년이 되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결혼, 모성 신화에 대한 공포. 실험적이면서 건조한 연출이 주는 공포가 묵직하다. 곧 한국 개봉을 앞둔 ‘바바둑’ (제니퍼 켄트, 2014)은 이러한 모성 신화에 대한 공포를 더 장르적이고 상업적인 방식으로 만들었다.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지기 전에도 일하는 싱글맘의 삶이 충분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