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개정 요구 수용 안 해
“‘친절한 남자’ 용례 있다” 해명
사전 재·개정 운동 다시 불붙어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뜻풀이를 바꿨으나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비판이 거세다. 서울 강서구 국어원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립국어원이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뜻풀이를 바꿨으나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아 비판이 거세다. 서울 강서구 국어원 건물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이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정의를 바꿔달라는 의견서를 낸 것과 관련, 국립국어원이 사전의 뜻풀이를 바꿨으나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국어원은 “여성연합의 의견서를 받은 후 정보보완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해 5월 26일 정기회의에서 논의한 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사전 뜻풀이를 바꿔 15일 웹사이트에 올렸다”고 16일 밝혔다.

앞서 표준국어대사전은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정치·법률 면에서 여성에 대한 권리의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남녀동권주의·여권 확장론’으로, ‘페미니스트’는 ‘① 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②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로 뜻풀이했다.

하지만 이번에 바뀐 내용 역시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국어원은 ‘페미니즘’은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남녀동권주의·여권 확장론’으로, ‘페미니스트’는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뜻풀이를 바꿨다.

사전 개정은 정보보완심의위원회 회의를 거쳐 국립국어원장이 최종 결정한다. 국립국어원장은 지난 5월 26일부터 송철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정보보완심의위원회는 내외부 위원 9인으로 구성되며 현재 대학교수로 구성된 심의위원 5명, 국어원 관계자 4명이 참여하고 있다.

국어원 관계자는 “실제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스트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는 용례가 있다”며 “사전이 정확한 의미를 풀이할 수도 있지만 언어에 관한 정보도 남겨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여성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전 재·개정 운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정보보완심의위원회 회의에 여성연합 추천으로 자문차 참석한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당초 회의에서 요구한 여성계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선 ‘페미니즘’을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 문화적 차이를 없애야 한다는 견해’로 표현한 것과 관련, ‘차이’가 아니라 ‘차별’ 또는 ‘불평등’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페미니스트’ 역시 ‘성평등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뜻풀이해야 맞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이전과 똑같이 페미니스트를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로 뜻풀이한 데 대해 비판이 거세다. 이 교수는 “국어원은 용례가 있다고 밝혔으나 1970∼1990년대 신문기사만 제시했을 뿐 근거가 부족했고 정확한 통계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여성연합은 18일 논평을 통해 “국어원의 낮은 성평등 의식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여성연합은 “국어원이 잘못된 사전 뜻풀이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를 그대로 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최근 온라인을 비롯해 한국사회 전반에서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현상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국어의 성차별을 불식시켜야 할 국어원이 잘못된 사전을 그대로 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다시 사전 재개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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