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본 구름 속 킬리만자로 ⓒ김경애
비행기에서 본 구름 속 킬리만자로 ⓒ김경애

탄자니아의 경제 중심지 다르에스살람을 떠나 대형 화물차가 바쁘게 오가는 왕복 2차선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넘나드는 추월을 하면서 2시간여를 달린 뒤 코이카(KOICA) 지원으로 ㈔글로벌투게더(Global Together·이하 GT)가 소액대출 사업을 진행하는 현장 믈란디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수혜자의 리더인 El(가명·62)를 첫 번째로 만났다. El는 나를 만나자마자 “아프리카에서는 여성이 전부다(everything)”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고 말하며 여자들이 모든 것을 다 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여자가 왜 전부이고 무엇을 다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 위치한 탄자니아는 킬리만자로의 나라이며 야생동물의 천국 세렝게티의 나라다. 130여 개의 부족으로 이뤄져 있는데 용맹한 전사 마사이족도 탄자니아의 한 부족이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부족 간 학살이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추진했던 초대 대통령 줄리어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는 아직도 존경의 대상으로, 다르에스살람으로 들어가는 공항의 명칭이기도하다. 초대 대통령은 “아프리카의 언어에는 계급이라는 말이 없다”면서 평등사회를 추구했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케냐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자신의 부족 전통을 지키고 있고(길거리에 독특한 복장을 하고 손에 지팡이를 든 마사이부족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용맹한 전사 마사이들은 이제 허리춤에 칼을 차고 대도시의 슈퍼마켓이나 큰 레스토랑에서 경비로 일한다), 언어는 스와힐리어를 쓰고 있으며 영어는 대학교육 이상을 받은 지식인들만 구사한다.

탄자니아는 지속적으로 5~7%대의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경제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지는 못한다. 빈부 격차가 큰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로, 인구의 36%가 빈곤선 이하이며 인간개발지수는 177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전체 인구의 약 87%가 국내총생산(GDP)의 48%를 차지하는 농업에 종사하며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86%가 여성으로, 농산물 생산의 80%를 여성이 담당해 경제적으로 큰 기여를 한다. 피고용 인구 중에도 여성은 50%를 차지한다. 농업 부문 외에서도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믈란디지로 가는 길에는 주유기가 20대 가까이 되는 거대한 주요소에 미혼 여성들만 주유요원으로 고용된 곳도 있고, 은행, 병원,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많이 보였으며 여자 교통경찰도 볼 수 있었다. 탄자니아 여성들은 하루 10~16시간 동안 가정과 일자리 노동의 3분의 2를 한다. 여성 가장 가족이 늘고 있으며, 농촌 지역이 더 가난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가난하지만 여성들이 가족을 돌보고 식량을 제공하는 책임을 진다.(World Bank, 2007; UNDP, 2004; African Development Bank, 2005; Tanzania Integrated Labour Force Survey 2000/2001).

 

경제 중심 도시인 다르에스살람에는 포장도로가 있으나 울퉁불퉁 파여 있고 하수도시설이 없어 비라도 오면 길에 물이 넘쳐난다. 신호등이 없는 길은 좁고 차들은 밀려서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닌다. 그러나 길에서 운전사들끼리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풍경은 전혀 없이 서로 수신호로 양보해가며 지난다. 탄자니아 사람들은 온화하고 말소리가 조용조용하다.(이렇게 온화하고 조용한 사람들도 서로 싸우나 싶었는데, 비 내리는 어느 저녁, GT와 인턴 파견을 논의하고 있는 다르에스살람 대학교 캠퍼스를 둘러보고 러시아워에 밀리는 길을 헤쳐 식사를 하러 가는데 우리 차가 추월을 잘못했다고 교통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몸집이 있는 여자 경찰과 온화하고 늘 조용한 현지인으로 운전을 하던 마사위가 소리소리 지르면서 싸우기 시작했다. 마사위가 큰소리를 내는 것을 처음 봐서 놀랐고, 여자 경찰이 소리치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더 놀랐다. 그 여자 경찰은 마사위에게 판정패했지만 씩씩했다.)

해외 개발원조사업을 하는 비정부기구(NGO)인 GT는 ‘드림 펀드(Dream Fund)’라는 소액대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나는 지난 1년간 3차에 걸친 대출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출을 받고 계속적으로 상환을 하고 있는 여성 52명 중 12명을 개별적으로 만났다(그 외 수혜자 남동생 1명과 대출 희망자 2명을 인터뷰했다). 60대 2명, 50대 3명, 40대 4명, 30대 3명으로, 모두 결혼한 경험이 있으며 19세에 결혼한 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20대에 결혼해 조혼의 경향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같은 집에 살고 있는 경우는 1명이며, 한 사례는 남편이 사망했고, 나머지 9명은 남편과 별거하고 있었다. 1명은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을 만난다고 하고, 1명은 한 달에 2~3일, 1명은 넉 달에 1주일간 남편이 찾아온다고 한다. 나머지 6명은 남편과의 만남이 부정기적이거나 단절돼 있다(그러나 이 여성들은 이혼했다고 하지 않았고 ‘별거’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남편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소액대출 수혜자 12명은 모두 실질적인 여성 가장이었다. 즉, 여성들이 벌어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대학교육을 받은 전직 공무원인 El은 1남 2녀를 남편의 경제적 지원 없이 홀로 키웠다. 남편은 마사이족인데 부인이 20명쯤 된다고 한다. 지금은 자신이 농림부에 다니면서 받은 월급으로 산 농토에 쌀과 메이즈 등 곡식을 심어서 파는데, 남자 노동자를 필요할 때마다 고용한다. 자녀들이 잘 컸고 공부를 잘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컸지만 남편에 대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그 이후에 만난 여성들도 현재 부부로 함께 살고 있는 경우를 포함해 남편에게 부인이 자신 외에도 한 명 이상 여럿 있거나, 떨어져 사니까 모르겠다고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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