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딩들이 ‘애’를 만들었다. 더 황당한 건 두 커플의 계급 차이다. 애 아빠는 재벌가의 상속자, 애 엄마는 가난한 서민의 딸. 이런 경우 ‘섭섭지 않게’ 돈봉투를 건네고 끝내는 게 일반적인데 끈질긴 생명력 덕분인지 아이가 태어났고, 우여곡절 끝에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그리하여 명망 높은(?) 대가문은 졸지에 풍문에 휩싸이고 만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부모는 아들과 며느리를 모두 고시에 합격시켜 그럴싸한 인생극장을 연출하기로 작심한다.
한데, 법을 배우면서 ‘어린 것’들이 가문의 거대한 부가 부정 축재임을 알고 부모와 ‘맞서고 개기기’ 시작한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의 기본 콘셉트다. 소재로 보자면 흔해빠진 ‘신데렐라형 막장’인데, 블랙코미디 형식을 취해 풍자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덕분에 도처에서 통념과 상식이 전복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먼저, 10대의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우리의 상식으론 ‘대형사고’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남녀의 생체주기상 혼인 적령기는 14세에서 16세, 곧 ‘이팔청춘’이다. 그러니까 두 주인공이 ‘얼라’를 낳은 것은 천지간에 지극히 당연한 노릇인 것. 3000년 이상 내려오던 이 자연적 주기는 지난 100년 사이에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20세기 초 이래 결혼 적령기는 조금씩 지연되다가 현재는 무려 33세까지 연장됐다.
그렇다 보니 30대 후반에 임신, 출산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야말로 ‘천지의 도’가 땅에 떨어진 격. 그 대가가 바로 저출산과 인구절벽의 도래다. 전세계가 이 전대미문의 난관에 봉착해 온갖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10대, 20대가 출산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면 된다. 아직까지야 펄쩍! 뛸 소리겠지만, 앞으로 인구 문제가 더 심화되면 10대들에게 제발 아이만 낳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진군이 아무리 거창해 보여도 생명의 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스토리의 진정한 배후 조정자는 갓난아기다. 위신과 체통에 목을 매는 부모도 결국 아기 앞에선 ‘바보’가 된다.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욕망을 어찌 참을 수 있으랴. 그걸 ‘백’으로 아들과 며느리도 점점 겁이 없어진다.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며느리의 삼촌이 연루된 ‘부당해고’ 문제를 다시 끌어내는가 하면, 집안의 ‘가신들’이 벌이는 연대투쟁에 동참하기도 한다. 졸지에 가족이 계급투쟁의 현장이 됐다. 혈육 간의 인정욕망과 계급 간의 권리투쟁이 오버랩되자 사태가 몹시 복잡해진다. 판을 확 뒤집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돈과 법으로 명쾌하게 정리할 수도 없다. 쉽게 말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
가족 내에서의 계급 투쟁, 그것은 달리 말하면 세대 갈등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전 세계가 바야흐로 세대 갈등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계급 투쟁은 전선이 분명하지만 세대 갈등은 그렇지 않다. 핵심을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자본과 핏줄, 이념과 에로스, 노동과 욕망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가치들이 막 뒤섞인 탓이다. 그래서 온갖 ‘풍문’들이 난무한다. 그 ‘불온한’ 기류 속에서 낡은 통념들이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이 드라마의 전개와 결말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