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 전 출근길에 옆 팀의 남자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동료의 아이 이야기가 대화 주제가 되었다. 직장 동료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최소한 1년은 아이에게 집중하기로 했고 나름의 역할 분담을 했다”고 말했다. 부모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돌보기 위한 동료의 가족 내 전략을 전해 듣고, 나는 오전 내내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얼굴과 자판에서 닦으며 회답서를 작성했다. 대비되는 나의 옛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10년 전 큰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게 됐을 당시 내 주변에는 육아와 관련해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수업을 위해 간식도 준비해 놓을 여유 없이 집을 뛰어나가면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둘째에게 “TV 보다가 작은 바늘이 9하고 10 사이에 있고, 큰 바늘이 6에 있으면 집을 나서서 학교에 가야 한단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은 집에 와 보니 둘째가 슈퍼에서 파는 간식을 먹고 있어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그쳤더니만 “엄마, 사실은 슈퍼에서 그냥 가져왔어요. 너무 배가 고파서요”라고 무릎 꿇고 잘못을 빌며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집을 나서서 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서면 시설 좋은 부설 유치원도 근처에 보이고, 박물관, 숲속, 체육시설 등이 있다. 나는 가끔씩 “내가 가끔씩 주말에 나와서 연구에 집중할 때 내 아이들이 이런 시설들을 활용하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논문 마무리 등 연구에 집중해야 할 때 공부하는 학생 부모를 위해 국가와 학교 측이 개별 가정에 돌보미를 집에 보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늘 이런 상상과 현실의 간극 속에서 괴로움을 느꼈다.
4월 21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대학의 부모학생 학업-가정 양립 정책 수립을 위한 포럼’이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와 한국연구재단 공동 주최로 열렸다. 나 같은 부모학생들이 목소리를 내며 정책 수립의 기반이 되는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의 학업-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부모학생들은 학업 생활의 만족도가 특히 낮았고,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교내에 일시보육시설 및 장학금(수당)에 대한 욕구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연구 중심 대학 우수 사례에서는 부모학생들이 출산휴가, 출산휴학, 양육휴학, 유급휴가 등의 제도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응정책 중 일환인 소위 ‘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은 일하는 부모, 그중에서도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부모학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맞벌이가 아니기 때문에 보육시설 입소 순위에서도 밀린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회는 부모학생의 ‘일·가정·학업’ 양립지원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부가 중심이 되고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과 협력해 관련 제도를 준비해야만 한다. 계층적 여건 역시 고려해 특히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부모학생에게는 우선순위를 부여해 경제적 어려움이 연구자로 성장해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10여 년 전 미국이었다면 나는 아동학대죄로 구속돼 영어의 몸이 됐을지 모른다. 슬프지만 “대한민국 만세”라고 해야 하나? 이런 대한민국에 살며 아동을 방치하면서도 대학원을 악전고투 속에 졸업했지만 더 이상 부모학생들이 남모르는 고통과 애환 속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