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듯 치열했던 30년을 말하다
느슨한 듯 치열했던 30년을 말하다
  • 엄수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1.30 17:23
  • 수정 2018-01-3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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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하하하 웃지만 슬프기도 한 ‘웃픈날’
또문은 울지 않는다?
정희진·노명우·나임윤경·서동진의 따뜻한 쓴소리
"상처입은 세대 위한 문화운동 점검해야"

 

또하나의 문화가 생긴지 30년이 됐다. 1일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또문 30년 : 이후 라운드테이블에 여성학·평화학자 정희진씨, 노명우(아주대 교수), 조은(동국대 교수), 나임윤경 교수(연세대 교수), 문화평론가 서동진씨가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또하나의 문화'가 생긴지 30년이 됐다. 1일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또문 30년 : 이후' 라운드테이블에 여성학·평화학자 정희진씨, 노명우(아주대 교수), 조은(동국대 교수), 나임윤경 교수(연세대 교수), 문화평론가 서동진씨가 참여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웃프다.’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대안문화 및 출판운동을 펼쳐온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 30주년을 기념한 자리는 재밌었지만 씁쓸했다. 유쾌한 농담에 좌중은 소리 내 웃었지만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칭찬만도 비난만도 어려운 30년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따가운 이야기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11월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하자센터 하하허허홀에서 또문 30주년 행사가 열렸다. 모인 사람만 얼추 100여 명, 그들은 또문과 저마다의 인연으로 ‘또문 30년: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라운드테이블에서 이야기를 이끈 이들은 조은(동국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노명우(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나임윤경(연세대 대학원 문화학협동과정 교수), 서동진(문화평론가), 정희진(여성학·평화학자) 네 사람이었다. 이들은 모두 ‘또문 아웃사이더’를 자처했지만 애정이 없다면 하기 힘든 말을 쏟아냈다.

이들은 또문을 떠올리며 ‘조4’를 거론했다. 1984년 우리나라 초창기 페미니스트 모임으로 조형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전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 조옥라 서강대 교수(사회학),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사회학) 등 우연찮게 성이 같은 여성 학자 네 명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쿨한 시집 식구’ 같은 또문 

나임윤경 교수는 또문에 대해 “쿨한 시집 식구 같다”고 말했다. 한 세대 젊은 페미니스트인 그들에게 조4는 존재만으론 쿨한, 그렇다고 쿨하기만 한 것도 아닌 존재였다. ‘묘한 부러움과 옅은 거부감’을 주던 존재로 또문을 기억했다.

또문에 대한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유학 갔다온 ‘배운 여자’들이 주체가 돼 전개하는 문화운동이자 부르주아운동 정도라거나, 남녀평등의 기초를 닦고 탈식민주의를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임으로 크게 갈린다.

이런 시선은 이날 참여한 남성들의 기억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뻔뻔하기로 했다’며 말문을 연 노명우 교수는 또문에 대해 “80년대 학번인 저희로선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또문에 대한 인상은 ‘인텔리 여성’의 동호인 모임, 그 이상 이하의 관심도 느껴지지 못했고 일종의 하나의 소문, 풍문과도 같은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소문과 풍문으로 접한 또문의 영향력이 그것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천덕꾸러기 vs 최초의 탈식민주의 운동집단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80년대 또문은 천덕꾸러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80년대 그악하고 억척스럽고 가끔 상스럽기도 한 촌스런 엄마 밑에서 지내다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에 왔을때 ‘배운 여자’들이 만든 또문에 대해 느낀 어색함과 불편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충분히 계급적이지 못하다’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못하다’ 등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오늘날 또문이 강조하는 ‘자율’ ‘공생’이 신자유주의와 동시에 터졌다는 점에서 과연 또문의 역할이 무엇이었냐고 반문했다. 그는 “파산을 경험하고 상처 입은 이후 세대에게 또문의 문화운동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점검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학자이자 평화학자인 정희진씨는 그럼에도 “또문은 문을 닫으면 안 된다”며 그나마 여성주의 언어와 다른 탈식민주의적 언어를 생산하는 곳이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또문은 한국 사회에서 드물게 혹은 힘들게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현장’을 문제화해 온 최초의 탈식민주의 사회운동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여성주의가 아니라 끊겨버린 여성주의자 간의 ‘연대’라고 지적했다.  

 

또하나의 문화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는 동안 시계방향으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오른쪽 하단), 정수복 박사, 조옥라 서강대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등이 유심히 듣고있다.
'또하나의 문화'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는 동안 시계방향으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오른쪽 하단), 정수복 박사, 조옥라 서강대 교수,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 등이 유심히 듣고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기루, 소문으로라도 남았으면 좋겠다”

주인과 손님이 없는 자리인 만큼 객석에서도 다양한 평가와 고민들이 나왔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경실련과 그 이후 생긴 참여연대의 운동과 연관시키지 못하고, 시민운동 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 지어 논의를 확장할 가능성은 없었는지 그게 답답했다”면서도 “이 조직이 그럼에도 그 자체로서 중요한 문화운동으로서 한국 사회에 파장이 있는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살아 있는 운동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또문이 너무 루스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지금도 투쟁의 에너지보다 고정희 시인 애도와 살아남은 자들의 상호 제사 같은, 친척들이 모여 긴장하면서도 우리가 같은 혈연이었지 확인하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언어와 아이디어의 형식화에 매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할 지점을 지적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또문이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신파와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언제까지 살아내는가 보자는 것”이라며 “기억의 공동체란 것에 대해 달리 생각했으면 좋겠다. 신기루, 소문으로라도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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