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분노하라 용기 있게 싸워라
(마쯔이 야요리/김선미 역, 모시는 사람들, 13000)

 

아시아에서 기억되어야 할 여성이 있다면 누구일까? 이런 저런 여성들을 기억하지만 왠지 일본여성을 기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본은 아시아 전역을 식민지화했으며 그 이후에 경제적인 대국이 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아시아를 통제하고 지배했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세계 그 너머를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일본 여성의 이야기란 결국 슬픈 사랑과 삶의 고뇌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의 성공이라는 틀 안에서의 영웅이야기일 거라는 지레짐작을 하게도 하였다. 그 밖에 일본여성의 삶이라는 게 뭐가 있겠는가? 제목까지도 마치 여성들의 사랑싸움을 위한 지침서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생각은 무너져 내려갔다. 이 책은 ‘마쓰이 야요리’라는 개인에 대한 위인전이나 자서전이 아니었다. 평생 일본의 진보신문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하였던 한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경험했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운동을 생생하게 기술한 역사서이고, 아시아 여성 운동의 흐름을 꿰뚫는 이론서이고, 세계 대전 이후 끊임없이 발발한 지역 전쟁을 치르며 살아온 여러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생생한 전쟁 증언서이다.

이렇게 거창한 수식어를 하나의 책에 붙인다니 내가 허풍쟁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바라본 세계에 대한 것이고 그녀의 크기였기에 다른 어떤 수식어를 찾기가 어렵다. 그녀는 캄보디아의 집단학살의 현장에 갔었고, 광주 민주화 현장에 잠입했으며, 베트남의 전후의 참상을 취재했고, 우리나라 학자보다 더 먼저 생존 위안부 여성들을 인터뷰했던 여성이다. 여성 운동의 차이의 이슈가 등장하는 멕시코 세계여성대회(1975)의 현장에도 그녀가 있었다. 그 밖에 너무나 위험하고도 위급한 현장에 그녀가 있었으므로 그녀가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어렵고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한 가지 동일하게 흐르는 것이 있다. 그녀가 더 많이 관심 가지려고 애쓴 대상은 그녀의 가족도 아니고, 그녀의 국가도 아니고, 그녀의 회사도 아니었다. 그녀가 지속적으로 관심한 사람들은 너무나 목소리가 약해서 찾아가고 집중해야 겨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회적인 약자’ ‘정치적인 약자들’이었다.

국가도 외면하고 국제 사회도 외면해서 이 세상 어디에도 편들어 달라고 호소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책에서 끊임없이 강대국 일본이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아시아 지역사람들을 집단 살해했는지 까지도 과감하게 고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기자적인 프로정신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찾아간 곳들은 너무나 위험한 현장들이었고 그녀는 어쩌면 그녀에게 절대적인 무력적 힘을 가할 수 있는 자신의 국가를 비난했고 다양한 정치적인 배경을 가진 거대 자본 기업의 잘못을 피해자들의 편에서 그들과 함께 고발했다. 그녀는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래서 설렁설렁 읽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전문 지식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고 지식인들이 본받아야 할 책이다. 혼잣말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쓰인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 야요리가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었을까?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광화문에 일본말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꼬장꼬장 분노하며 용기를 내며 또다시 숨겨지고 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드러내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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