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경력단절 넘어 점토공예로 재능 기부
제주 생활 2년 차, 아직도 동네에선 ‘육지년’
“제주 여성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 싶어”

 

김진경 머들공방 대표(42)는 8일 여성신문과 만나 클레이(점토)아트를 통해 제주도 이야기를 담고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진경 머들공방 대표(42)는 8일 여성신문과 만나 클레이(점토)아트를 통해 제주도 이야기를 담고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업실은 따로 없다. 단출한 집 한 칸이 아이들과 밥 먹고 색점토를 갖고 노는 생활 공간이자 작업실이다.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아이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하게 됐다”는 김진경(42) 머들공방 대표에게 예술과 생활은 따로 떨어진 게 아닌 함께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8일 여성문화인상 시상식이 있던 날 김 대표를 만났다. 11살짜리 딸의 손을 꼭 잡고 나타난 그는 “수상 소식이 믿기지 않아서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다”며 “격려를 해주신 것 같아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내려간 지 2년째. 제주 사람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가 사는 청수리는 제주도 서부지역으로 도심과 꽤 떨어진 200여 명 정도가 사는 한적한 마을이다. 이웃 주민 대부분은 밭일과 과수원 일을 하는 바쁜 농사꾼들이라고 했다. 밭일은커녕 서울에서 태어나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4년 동안 승무원으로 일한 게 사회생활의 전부다 보니 지금도 주민 어르신 중에는 그녀를 걸쭉하게 ‘육지년’으로 부른다고 했다.

두 아이 엄마인 그녀가 제주 생활을 결정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그 용기를 12년 동안 ‘멈춰 있던 삶’에서 찾았다. 그는 “12년 동안 모든 게 멈춰 있었다. 아이 엄마로선 축복됐지만 ‘김진경’으로선 멈춰 있던 시간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 말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아이들 엄마로서 여자로서 어떻게 하면 경력 단절된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사회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그 부분을 너무 간절히 원했던 것 같아요.”

승무원으로 일할 때도 대학 전공이었던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제주에 내려온 김에 얼마간의 재능을 나누고 싶었다. 금속공예 전공을 살려 재능 기부를 시작한 것이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까지 집에 불러 함께 점토 수업을 시작했다. 청수리엔 딱히 사교육을 받을 만한 곳은 없었다. 주변 동네 아이들과 클레이아트를 시작했고, 동네에 알려지면서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돌봄교실 미술강사일도 했다. 서울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이들도 점점 제주 섬 생활에 적응해갔다.

 

이밖에도 지역 새마을문고에서 미술 프로그램 수업과 미혼모 시설인 애서원에 있는 여성들, 성이시돌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과 공예수업을 진행하면서 돈보다 더 큰 기쁨을 알게 됐다. 그는 “돈이 1순위가 아니다 보니까 경제적인 부분은 늘 아쉬움도 있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에는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탁 트인 바다가 좋아서, 회색 돌이 좋아서 작업 공간이자 삶의 터로 정했다. 특히 제주 돌을 좋아한다며 머들공방의 ‘머들’의 뜻도 돌무더기라고 말했다. 머들공방은 올해 3월 지금까지 재능 기부를 하며 조금씩 해 온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 보자는 의지로 시작하게 됐다.

지난 2011년 12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인형전시회에서 개인 작가로 처음 이름을 걸고 참여했다. 한국의 유명인사 7명과 세계 예술가 5인의 점토 인형(클레이아트)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MBC의 요청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인형을 만들기도 했다.

자신의 ‘클레이아트’에는 제주의 삶, 제주 이야기를 담고 싶단다. 그는 “앞으로 제주 농촌 이야기, 해녀 이야기를 담고 싶다. 또 싱글맘 등 여자들의 이야기, 엄마란 주제를 담아서 작품 활동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가족에겐 “넌 왜 이렇게 유별나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가장 ‘나’다운 것을 찾다보니 제주에 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고 도전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이번 신진여성문화인상은 그에게 “응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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