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한산한 거리…‘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는 말이 무색
헌책방 상인들 “책 읽지 않는 시대, 뚝심으로 극복”

 

서울 종로구 청계6가 평화시장 1층에 위치한 청계천 헌책방 골목.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종로구 청계6가 평화시장 1층에 위치한 청계천 헌책방 골목.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골목길 양옆으로 빈틈 없이 책을 쌓아올린 책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퀴퀴한 냄새, 손때 묻은 타인의 흔적이 낯설지 않다. 서울 종로구 청계6가 평화시장 1층 청계천 헌책방 골목이다. 

13일 오후 25곳의 서점이 어깨를 맞대고 있는 헌책방 골목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매장 안에는 직원들만 있을 뿐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혹 두어 명의 행인들이 서점을 기웃거리거나 휴대폰으로 헌책방 외관 사진을 찍다가 이내 자리를 뜰 뿐이었다. 1960~70년대에는 200여 개의 서점이 밀집, 책을 사려는 학생들로 가득했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색을 지닌 책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 서울시가 청계천 헌책방 간판 교체 공동사업을 진행해 교체된 한글 간판도 눈에 들어왔다.

 

25곳의 서점이 모여있는 헌책방 골목. 상인들은 손님이 있건 없건 여유를 부리며 책을 정리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5곳의 서점이 모여있는 헌책방 골목. 상인들은 손님이 있건 없건 여유를 부리며 책을 정리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책방 거리는 각종 서적을 도소매로 판매하는 ‘하나서점’을 시작으로 버들다리 근처 ‘동신서림’에서 끝난다. 하나서점 옆에 위치한 정은도서·유림사는 해외 패션지를 취급한다. 이곳의 단골은 주로 패션 디자이너. 가까운 동대문 의류 도매센터에 들렀다 많이들 온단다. 이날 정은도서에서 만난 패션디자이너 김희정씨는 “해외 패션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 시간을 내서 들렀다. 7년째 단골”이라며 이탈리아 패션 잡지 ‘클로즈업(CLOSE-UP)’을 들춰 보고 있었다.

기독 서적 전문 책방 ‘평화서림’을 지나면 동아서점이 나온다. 백과사전 위주로 판매하는 ‘동아서점’이다. 박종구(65) 대표는 6.6㎡(2평) 남짓한 공간에서 30여 년간 책방을 운영해오고 있다. “손님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잖아요. 책 읽는 문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펼쳐야 해요.” 박 대표가 열변을 토하던 중 팝송 책을 찾는 손님이 들어왔다. 곧바로 이곳저곳 손을 뻗어 책 3권을 소개한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어떻게 장사를 해요. 책이 많아서 정신이 없긴 하죠?(웃음)”

 

헌책방 골목에 쌓인 책들. 퀴퀴한 냄새마저 정겹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책방 골목에 쌓인 책들. 퀴퀴한 냄새마저 정겹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책방의 묘미는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의 책이나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고서를 비롯해 인문·사회·과학책을 갖춘 ‘상현서림’에서는 보물찾기 하듯 마음에 드는 책을 하나둘 건져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그려진 조일신문(아사히신문 출판)이 눈에 들어왔다. “90년도 더 된 주간지예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상현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이응민(51)씨가 책을 소개한다. ‘책’의 매력에 대해 묻자 그는 “옷은 유행이 지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며 “이제는 책의 제목만 봐도, 사람들이 책을 훑어보는 것만 봐도 괜찮은 책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상현서림에서 나오자 때마침 ‘책사랑’ 앞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건강과 관련한 책을 보러 왔다는 이준석(40)씨는 “대형 서점에 없는 책을 찾을 수 있어 청계천 헌책방에 오게 된다”고 말했다. 

 

헌책방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책방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하루 종일 서점에 서서 책과 씨름을 하고, 부대끼는 이들이 추천하는 책은 무엇일까. 어떤 특별함이 있을지 사뭇 궁금해졌다. 20여 년간 ‘덕인서림’을 운영한 백선민(55) 대표는 ‘털 없는 원숭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영국의 저명한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대표작이자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옆에 놓인 소설책은 어떤지 묻자 “‘털 없는 원숭이’에 비하면 그건 책도 아니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사치보다는 지식인처럼 느껴졌다. 

 

헌책방 앞에 있는 책을 읽고 있는 손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책방 앞에 있는 책을 읽고 있는 손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점을 한 바퀴 돌아 청계천로(오간수교 근처)로 내려갔다. 1960~70년대 ‘옛 헌책방 거리’를 축소한 조형물이 전시되고 있었다. 옛 추억과 함께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책을 보며 사람들은 추억을 더듬는 모습이었다. 

깊어가는 가을, 작은 물병 하나 챙기고 헌책방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그곳에서 분명 진흙 속에 묻힌 진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50년간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지켜온 책방 주인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정(情)은 덤이다.

 

청계천로(오간수교 근처)로에는 오는 19일까지 1960~1970년대 ‘옛 헌책방거리’를 축소한 조형물이 전시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청계천로(오간수교 근처)로에는 오는 19일까지 1960~1970년대 ‘옛 헌책방거리’를 축소한 조형물이 전시된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오래전 누군가 꼬깃꼬깃 접어가며/ 밤새 안고 뒹굴었을 흔적을 더듬어 갈수록/ 새 옷에 묻은 허세가 떨어져 나가고/ 마른침 삼키며 떨리는 손끝으로 넘기던 책갈피 그 끝자락에/ 엷게 묻은 지문이 전이되어 오면/ 내게 오기까지의 시간이/ 징검다리 건너듯이 한 발 한 발 다가선다          

허영숙 시(詩) ‘헌책방에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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