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지배하는 자, 그가 바로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드는 그의 소설 ‘향수’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보이지 않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기에게서 나는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사람마다 얼굴 모습이 다르듯, 자신에게 맞는 향기도 다르다. 그렇다면 내게는 무슨 향이 날까? 평소 인공적인 향이 싫어 향수 하나 갖고 있지 않던 나는 이번 기회에 ‘나만의 향수 만들기’ 도전에 나섰다. 

 

취향 파악하기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위치한 데메테르 퍼퓸 스튜디오를 찾았다. 한눈에 들어오는 200여 개의 향수병,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사의 작업실에 온 듯하다. 퍼퓸(향수) 디자이너 헨리 안씨가 사전 조사 용지를 건넸다. 

“향수는 요즘 누구나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죠. 그런데 자신에게 잘 맞는 향수,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향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향수를 만드는 첫 단계는 ‘취향 파악하기’. 자신이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이나 좋아하는 색 등을 적는다. 다음으로 종이에 그리고 싶은 장소나 물건 등을 그린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하얀 종이 위에 산과 숲, 태양, 보리밭길 등을 그렸다. ‘자연의 향’이 떠올랐다. 안 디자이너는 이 그림을 참고해 스포이드 병 7개를 꺼냈다. 

 

“시향 페이퍼에 향기를 발라 맡아보세요. 냄새가 강해 코가 마비됐다 싶으면, 옆에 있는 원두 향을 맡아 진정 시켜주세요.” 추천받은 7가지 향기를 시향 페이퍼에 뿌려 하나하나 코끝으로 맡아봤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향이 있고, 역하게 느껴지는 향이 있었다. 고심 끝에 고른 3가지 향은 블루베리, 비누향이 감도는 코튼블루, 과일향이 묻어나오는 딜리셔스.  

취향에 맞는 향을 고른 뒤에는 향수의 향기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인 노트(note)의 비율을 결정한다. 조향 용어인 노트(Note)란 향이 갖는 성격과 이미지를 말한다. 

“향수는 톱·미들·베이스 세 가지 노트로 나뉩니다. 향수를 뿌렸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이 톱 노트, 그 다음 미들과 베이스 노트입니다. 가장 묵직한 향이 베이스 노트고, 가볍고 신선한 향이 톱 노트입니다. 톱 노트는 휘발성이 강해 감귤이나 바다향과 같은 시원한 향을 많이 선택하세요.” 안 디자이너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고, 향수  ‘오드트왈렛(Eau de Toilette)’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약 6~8%의 항료가 함류된  오드트왈렛은 초보자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향수다.

 

딜리셔스를 50%로, 블루베리를 40%, 코튼블루를 10%씩 배합하기로 했다. 비율을 정한 뒤에는 테스트를 하기 위해 샘플을 만들었다. 플라스틱 비커를 전자저울 위에 올려놓고 각각 0.5g․0.4g․0.1g씩 떨어뜨리며 1g의 샘플을 만들었다. 생각했던 향과 흡사하다. 마음에 든다.  

이제 각각의 향을 30g을 기준으로 12.5g, 10g, 2.5g씩 비커에 떨어뜨렸다. 0.01g의 오차도 생기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배합이 끝나고 완성된 향수를 30㎖ 병에 옮겨 담았다. 향수를 뿌렸다. ‘칙’ 소리와 함께 과일향이 공기에 감돈다. 

“지금은 세 가지 향이 각각 따로 나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세 가지 향이 배합이 돼서 향이 좋아집니다. 자신만의 향을 고르는 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운 향수 매장에 가셔서 자주 맡아보고 뿌려보는 거죠. 그럼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는 향이 있을 거예요. 막막하다면 이렇게 직접 향수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완성된 향수를 병에 담고 향과 어울리는 라벨을 붙였다. 달콤한 향이 감도는 만큼 ‘벌꿀 유혹’이라고 향수 이름을 정했다. 누군가 이 향기를 기억한다면 훗날 우연히 비슷한 향을 맡았을 때 나를 떠올릴 것이다. 추억과 함께. 

 

완성된 향수 (맨 오른쪽). 이름은 벌꿀 유혹이라고 지었다.
완성된 향수 (맨 오른쪽). 이름은 '벌꿀 유혹'이라고 지었다.

*향수, 이것만은 알고 뿌리자

<향수의 종류>

향수는 알코올과 향료의 함유 비율인 부향률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분류한다. 

•퍼퓸(Perfume) 약 15~25%의 향료가 함유된 농도가 가장 진한 향수. 농도가 진한 만큼 지속시간(6~7시간)도 길다. 초보자들이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오드퍼퓸(Eau de Perfume) 약 10~15%의 향료가 함유된 향수. 지속시간은 5시간 전후. 

•오드트왈렛(Eau de Toilette) 약 6~8%의 항료가 함유돼 초보자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향의 지속시간은 3~4시간. 향수의 기초로 사용된다. 

•오드코롱(Eau de Cologne) 약 3~5%의 향료가 함유된 향수. 향수 냄새가 거북하거나 처음 접한다면 ‘오드코롱’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단 향의 지속 시간이 짧다.

<향수 뿌리는 법>

향수는 뿌린 후 시간이 지날수록 향의 느낌이 달라진다. 배합된 향료들이 휘발하는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 따라서 향수를 고를 땐 첫 향이 날아간 이후의 잔향을 고려해야 한다.

향취를 맡을 때는 맥박이 뛰는 부분에 한두 방울 정도 바르거나 흰 종이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 테스트하는 것이 좋다. 손목이나 귀 뒤에 향수를 뿌리면 향이 점차 퍼진다.

치마 끝 안쪽에 살짝 뿌려주면 걸을 때 혹은 바람이 불 때 향기가 퍼지게 된다. 테스트 한 시향종이를 가방이나 책에 넣어두는 것도 향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TIP 향수를 만들려면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위치한 데메테르 퍼퓸 스튜디오에 날짜와 시간 확인 후 예약을 하면 된다. 가격은 30㎖에 6만원, 50㎖에 8만원. 이밖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향수공방 ‘지엔 퍼퓸 스튜디오’(50㎖ 5만원), 서울 홍대에 위치한 향수 전문점 ‘에프가든’(30㎖ 3만5000원, 50㎖ 5만원)에서도 향수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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