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고향 노래가 없다고 해서 여자에게 고향이 없는 건 아니다. 여자보다 남자들이 먼저 고향을 떠나기 시작해 고향 노래를 장악해버렸고, 그네들의 시선으로 고향 떠난 여자들의 정조를 걱정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대중가요 속 여자들은 그만 고향에 묶여버렸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여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가, 딱 한 종류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민중가요 계열의 노래다. 대중가요 중에서도 ‘비판적 포크’라 분류할 수 있는 노래들(결국 이들은 민중가요로 흡수됐다)만이 여기에 속한다. 

 

양희은의 ‘서울로 가는 길(김민기 작사·작곡, 1972)’을 보자.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 지 삼 년에/ 뒷산에 약초뿌리 모두 캐어 드렸지/ (후렴)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후렴)

아침이면 찾아와 울고 가던 까치야/ 나 떠나도 찾아와서 우리 부모 위로해/ (후렴)

앞서가는 누렁아 왜 따라나서는 거냐/ 돌아가 우리 부모 보살펴 드리렴/ (후렴)

좋은 약 구하여서 내 다시 올 때까지/ 집 앞의 느티나무 그 빛을 변치 마라/ (후렴)

이 노래는 남자인 김민기가 지은 노래지만 양희은이 불러야 제맛을 내는 노래다. 1960년대 후반부터 남녀 모두 ‘무작정 상경’과 이농의 대열에 들어서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여자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부터 돈벌이에 나섰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값싼 여성 노동자의 섬세한 손에 의존하는 봉재·섬유·전자산업 등이 견인차가 됐다. 부모 입장에서도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므로 조금 더 공부를 시켜야 했고, 딸들이 일찍부터 돈벌이에 나서 학비를 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노래에서는, 부모의 약을 구하러 서울을 간다지만, 사실은 약 살 ‘돈’을 벌러 서울에 가는 것이리라. 의료보험이 없던 그 시절에 의료비와 학비는, 시골의 딸들을 서울의 돈벌이로 내모는 가장 전형적인 요인이었다. 돈 벌러 서울 간다고 곧이곧대로 쓰면서 이처럼 축축 처지는 노래를 만들었다면, 아마 분명 검열에 걸렸을 것이다.

필자는 나이 서른이 넘어서야 3절이 지닌 숨은 뜻을 겨우 이해했다. 노래의 주인공이 부모 몰래 집을 나선 것임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가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집 앞에서 부모가 전송을 해주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누렁이는, 주인이 평소처럼 마실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따라오는 것이다. 1,2절에서 절제하고 있던 눈물이 3절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포크 작가 김민기가 이렇게 말문을 열어놓자, 1980년대부터는 후배들이 그 뒤를 이어 노래를 만들었다. 

(1절) 뒤로 가는 고향 하늘 보며 / 두근거려 서울 온 지 5년 / 그까짓 돈 몇 푼 쥐고 싶어서 / 여기저기 공장을 떠다녔지 / (후렴) 그러나 쉬지 않고 벌어야 할 공순이는 /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 그것이 곧 졸업이지요

(2절) 열다섯 교복을 벗어던지고/ 병든 부모 어린 동생 떠나며/ 혼자 벌어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가고 싶어 울기도 했어/ (후렴)

                                       

‘귀례 이야기’(이성지 작사·작곡, 1986)라는 이 노래는 민중가요라는 이름으로 비합법 음반에 실려 발표된 후, 1991년에야 노래를찾는사람들의 ‘합법 음반’에 수록됐다. 그나마 ‘공순이’라는 단어가 검열에 걸려 ‘순이’로 바뀐 채였다. 주인공은 15세에 ‘공순이’가 됐다. 전태일의 수기는 물론 1990년대 말 신경숙의 중편 ‘외딴 방’에서 확인되다시피 이 시대의 여공들은 10대 중반부터 일을 시작했다. 18세 미만 고용 금지라는 법조항을 무시할 수 없는 큰 공장에서도 위조된 서류임을 뻔히 알면서도 15, 16세 소녀들을 뽑았다. 신경숙은 중졸 16세 나이에 친척 언니의 주민등록등본으로 서울의 공장에 취직했다. 그러고는 겨우 몸을 누일 만한 싸구려 ‘벌집방’에서 살았다. 이런 삶은 대중가요에서는 외면받았고 민중가요만이 노래했다. 이런 삶이 결코 예외적 소수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흥미로운 것은 이런 여자들의 고향 노래에서는, 귀향을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살이가 힘들수록 ‘고향앓이’도 심해지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돌아가 봤자 먹고살 방법이 없으니까. 1980년대 말에 안혜경이 지은 민중가요 ‘서울에서 살거야’는 물론, 2000년대에 크게 인기를 모은 뮤지컬 빨래의 주제곡 ‘서울살이 몇 핸가요’에서도, 서울살이 몇 년 동안 몇 번씩 직장 옮기고 이사 다니는 삶에도 불구하고 ‘귀향’은 꿈도 꾸지 않는다. 여러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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