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적합하고, 지속가능한(3S)’ 삶 추구
29개국 189개 슬로시티 중 한국 11개 선정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은 ‘슬로’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은 ‘슬로’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슬로시티는 조화의 운동입니다. 느림과 빠름, 디지털과 아날로그, 로컬과 글로벌, 시골과 도시, 삶의 양과 질이 조화를 이뤄 균형을 맞추는 것이죠. 한쪽으로 쏠리면 안 돼요.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입니다. 이 운동은 국가적 차원에서 크게 봐야 해요.”

‘슬로시티(Slowcity)’라는 말만 보자면 ‘느린 도시’로 해석되지만 손대현(70)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은 ‘슬로’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제적으로 ‘치타슬로(Cittaslow)’로 불리는 ‘슬로시티’ 운동은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됐다. 경쟁과 속도에 내몰린 현대인들에게 잊고 있던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는 운동이 ‘치타슬로’ 운동이었다. 올해 8월 현재 전 세계 29개국 189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가입돼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11개 도시가 ‘슬로시티’에 선정돼 있다. 이웃한 중국은 2개, 일본은 1개, 대만이 1개 도시만이 슬로시티에 가입돼 있는 것에 비하면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가입률이 압도적으로 많다. 유럽에 가까운 터키만이 아시아 대륙에서는 9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한국의 슬로시티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은 데에는 손 이사장의 역할이 컸다. 1999년 시작된 슬로시티 운동이 발원지인 이탈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을 즈음 손 이사장이 2005년 한국슬로시티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슬로시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손 이사장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97년부터 슬로시티 운동을 고안하고 있었다고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우리나라 대그룹 15개가 무너졌어요. 국가가 부도 나는 것을 보고는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빠르게만 살았더니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잖아요. 이제는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했죠.”

 

슬로시티 운동에서는 ‘3S’를 강조한다. ‘느리고(Slow), 작고(Small), 지속가능한(Sustainable)’ 것이다. 손 이사장은 ‘슬로’ 외에 ‘작은(Small)’을 ‘적합한’ 것으로 설명했다. 가진 사람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 탐욕을 멈추고 자신에게 적합하게 살자는 것. 또한 지속가능한(Sustainable) 것은 자연과 생태, 생명을 중시하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뜻한다. 이러한 슬로시티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대분류 7개, 소분류 71개의 평가 항목을 충족시켜야 한다. 슬로시티 가입 신청 후 심사하는 데만 1년에서 1년 반이 걸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번 지정된 이후에도 5년마다 재평가를 받아 슬로시티의 가치가 잘 구현되고 있는지 점검한다.

주로 인구 5만 명 이하의 소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슬로시티에는 전남 신안·완도·담양, 경남 하동, 충남 예산, 경기 남양주, 전북 전주, 경북 상주·청송, 강원 영월, 충북 제천이 가입돼 있다. 이들 도시는 자연과 전통과 공동체를 지켜나간다는 슬로시티의 철학에 부합해 각 지역의 독창적 특성을 브랜드화한 곳이다. 예를 들어 전남 완도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인정한 최초의 슬로길을 보유하고 있고, 전북 전주는 전통문화예술형 슬로시티, 경북 청송은 에코슬로라이프의 최적소인 청정지역 산촌형 슬로시티, 충남 예산은 생태공원과 천혜의 슬로 낚시 명소인 예당호수가 있는 자연생태형 슬로시티 등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슬로시티로 지정되고 보존되면서 관광객 유치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슬로시티는 한마디로 국민행복운동이에요. 뜨내기 관광객이 와서 밥 한 끼 먹고 그냥 떠나는 곳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는 거죠. 그곳의 정주민도 행복하고요. 주객이 모두 행복한,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행복을 느끼는 곳이 슬로시티입니다.”

민관 합치 운동인 슬로시티는 주민협의회와 공무원들이 슬로시티를 위한 ‘서포터스’가 돼 슬로라이프를 위해 활동하게 된다. 슬로라이프를 위한 행동강령도 정해놓고 실천한다.

“지금도 각 시·군에서 관심을 가지고 슬로시티에 가입 신청을 낸 곳이 20여 군데 됩니다. 앞으로 각 도마다 2~3개씩 슬로시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손 이사장은 2010년 국제슬로시티연맹의 부회장에 선출된 후 국제슬로시티연맹 최초로 이탈리아가 아닌 외국에서 첫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도록 유치하기도 했다. 마드리드 국립관광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받은 손 이사장은 미국 미시간주립대 객원교수를 거쳐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 사회대학장, 국제관광대학원 원장, 최고엔터테인먼트CEO과정 원장을 역임했다. 

 

슬로라이프 행동강령 17가지

1. 자동차 몰지 않는 날 정하기

2. 외모가 중요하니 항상 웃기

3. 여유로운 식사시간 즐기기

4. 제철 유기농 에코 푸드 먹기

5. 때때로 아무것도 안 하기

6. 텔레비전 보지 않는 날 정하기

7. 유용한 불편함을 즐기기

8. ‘Festina Lente(천천히 서두르자)’ 익혀보기

9. 일은 천천히 제대로 하기

10. 천천히 걷기

11. 3초만 기다리기

12. 인생을 여행처럼 나그네처럼 살기

13. 물건 사지 않는 날, 쓰레기 만들지 않는 날 정하기

14. 온라인 안식일 갖기, 휴대폰 휴대하지 않는 날

15. 3R(Reduce 적게 쓰기, Reuse 다시 쓰기, Recycle 재활용하기) 운동하기

16. 전통과 지혜를 사랑하기

17. 정리정돈 잘해 심플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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