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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4주년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갈등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한국전쟁은 우리 사회 곳곳을 폐허로 만들었다. 전쟁이 남긴 상흔에 대해 최인훈은 그의 소설에서 “똑똑한 놈 감옥 가고 반반한 년 양갈보 된다”라고 표현했다. 고은은 전쟁 당시를 임시사회라고 하면서 개탄했다. 대부분 전쟁 이후의 사회에 대해 ‘보이는 것은 양갈보, 구두닦이’라고 할 정도로 전쟁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

전쟁으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많이 증가했으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대부분 비공식적 경제활동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성매매 혹은 장사에 나서는 것 등이었다.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가정에서 사회로 진출해야 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총궐기할 것을 요구했다. 여성들에게 “일선에 위문품을 보내자” “출전하는 용사들을 환송하자” “이재민들을 구호하는 실제 사업에 동원되자” 등을 외치면서 가정의 문을 박차고 ‘조국의 어머니와 딸’로서 동원될 것을 요구했다. 모윤숙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혁명이 일어나야 하며 조국을 위해 희생하여 ‘재건 국가의 비료’가 되자고 외쳤다. 그러나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많은 여성은 ‘조국의 어머니와 딸’이 아니라 당장 오늘 가족과 함께 먹어야 할 ‘밥’이 필요했다.

성매매를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은 장사에 뛰어들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하던 일의 연장이었다. 날품팔이, 미군 부대 세탁부, 바구니 장수, 담배 장수, 군복 장수, 빈대떡집, 대포집, 다방, 댄서, 계, 요리집, 계 오야(계주), 고리업 등이었다. 이외에 조금이라도 자본이 있는 여성들은 ‘딸라(달러) 장사’를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성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전쟁이 남긴 가난은 여성들이 계속 경제활동을 하게 만들었다. 장사를 하는 여성들은 국가, 사회, 가정에서 동정도 받기는 했지만 대부분 냉대를 받았다. 여성들은 장사 밑천 부족으로 불법적인 장사를 많이 했다.

이로 인해 국가에서는 여성들을 단속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면서 가족을 부양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은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획득해냈다. 전쟁은 많은 남성들의 생명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들을 대신하여 단기적이고 보조적인 경제활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여성들의 삶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여성들의 경제활동은 한국 경제 성장을 위해 사회 저변에서의 중요한 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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