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힐러리’, 난제 해결하는 개도국형 리더
‘남미의 힐러리’, 난제 해결하는 개도국형 리더
  • 주준희 / 여성협상리더십연구원 원장
  • 승인 2014.06.16 21:52
  • 수정 2014-06-23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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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직선 부부 대통령’
대규모 반정부 세력 속에서
빈곤율 감소, 국가채무 해결 등 긍정적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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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페이스북

아르헨티나의 현직 여성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61)는 아르헨티나에서 선거로 선출된 첫 여성 대통령이자 재선된 첫 여성 대통령이기도 하다. 또 남편과 함께 세계 최초의 ‘직선 부부 대통령’이다. 2008년 경제 잡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권력 있는 100인의 여성 중 13위로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지목했다(2013년에는 26위로 떨어졌지만). 국가 수반으로서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다음이었다. 2013년에는 타임지가 세계의 10대 여성 지도자 중 4위로 그를 지명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사회가 안정되지 않고 여론이 분열된 가운데 산적한 난제를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개발도상국형 여성 리더다. 여느 개발도상국 정치가들처럼 열렬한 지지자가 있는 반면 반대하고 비판하는 세력도 못지않게 강하다.

변호사 출신인 페르난데스는 ‘남미의 힐러리’라고 불리며 긴 머리에 늘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등 화려한 패션을 즐기는 ‘여성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페론주의(국가사회주의)자로서 여성 정치가였던 에바 페론 영부인과 이자벨 페론 대통령의 전통을 이어 전투적이고 호소력 있는 연설로 대중을 사로잡는 ‘여장부형’ 리더이기도 하다. 강한 카리스마로 ‘파타고니아의 표범’이라 불리기도 하며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아 온갖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1953년 2월 19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버스 운전사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여성의 선거권을 쟁취하며 페론주의 여성당을 창당했던 ‘아르헨티나 민족의 영적 지도자’ 에바 페론의 열정과 전투성에 심취한 페르난데스는 라 플라타 국립대학 법학과에 재학하는 동안 ‘페론주의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자신의 영웅인 이자벨 페론 대통령이 1976년 쿠데타로 실각했을 때, 남편이 될 네스토 키르츠네르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하고 산타크루스로 도피해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자녀는 1남1녀를 두었다. 1983년 군사정권이 몰락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면서 남편은 주정부 공무원이 되고, 1987년 지방선거에서 리오 갈레고스 시장에, 1991년에는 산타크루스 도지사에 당선됐다.

첫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간 1989년 페르난데스 자신도 지방선거에 도전해 36세에 도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이때부터 크리스티나와 남편은 한 번도 선거에서 패배한 적이 없고 결국 둘 다 대통령에 선출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페르난데스를 ‘남미의 힐러리’라고 부른다. 페르난데스는 1993년에 도의원에 재선되고 1995년에는 산타크루스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같은 해 남편은 도지사에 재선된다. 페르난데스는 1997년에는 하원의원,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2001년에는 다시 상원의원으로 당선돼 4선 의원이 됐다. 2년 후 남편은 대통령이 됐고 페르난데스는 영부인의 역할을 담당하면서(2003~2007) 2005년에 상원의원으로 재선된다.

2007년 남편은 지지율이 60%였지만 대선에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부인인 페르난데스가 45.3%의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역사상 최초의 ‘부부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그녀가 대통령으로 통치하는 동안 남편은 여당 당수로 200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원에 당선됐다. 2010년 심혈관 수술을 2번 받은 남편은 2011년 대선 도전을 준비하던 중 6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검은 상복을 입고 대선에 도전한 페르난데스는 54.1%로 대통령에 재선됐다. 그 역시 2013년 10월 머리 부상으로 뇌출혈이 있어 수술을 받은 후 공개적인 자리에 드물게 나타나 건강문제가 회자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인플레이션, 노사분규, 국가통계에 대한 불신, 공과금 인상 요구, 외채 협상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취임 2년째 되는 2008년에는 콩 수출에 대한 과세를 35%에서 44%로 인상해 농민협회의 반발에 부닥쳤고, 대규모 시위 속에 부통령이 반대해 대통령 발의 법안이 실패하는 쓰라린 경험을 했다. 지지도는 57.8%에서 23%로 급락했다.

국내의 반정부 세력에도 불구하고 페르난데스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2001년 국가부도에서 남은 채무를 청산했다. 외채가 국내총생산(GDP)의 30%이고 중앙은행 외화 보유고가 490억 달러인 건강한 재정 상태에 도달했다.

대통령에 재선된 후 여당은 재정개혁을 추진해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수입제한법, 해외예치금 반입 등 정부 개입을 가시화하고, 세금 인상, 임금인상 억제, 보호무역, 공기업 재조직을 추진했다. 이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대통령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고위 공직자의 부패 스캔들과 부실한 철도 관리로 인해 51명이 사망하고 703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있은 후 정국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20만 명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있었고 현재 지지율은 32.1%로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는 매우 어려운 시기다.

지난 부활절 휴가를 마치고 나타난 페르난데스는 “다음 대통령에게 훨씬 발전한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며 2015년 3선에 도전하지 않을 것임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아르헨티나의 현실은 누구라도 페론식 포퓰리즘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직선 여성 대통령으로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많은 여성의 롤 모델이 됐고 마초식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정치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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