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99%의 삶을 돌아보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올해 열여섯 돌을 맞았다. ‘각양각색 99%’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30개국 99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로 1997년 시작한 영화제는 그동안 여성의 시각으로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다룬 영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여성영화제로 발돋움했다.

올해의 주제인 ‘각양각색 99%’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은 모두 1%가 아닌 99%의 삶이라는 뜻으로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경제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달려가면서 빚어내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4월 29일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에서 열린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우선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분들 앞에서 고개 숙여 애도의 마음을 표한다”며 “이후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반성을 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영화와 함께 ‘각양각색 99%’라는 주제에 대해 관객들이 대화하며 성찰과 희망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그녀들을 위하여’는 보스니아 내전 중 여성들에게 행해졌던 폭력의 역사를 다시금 되짚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첫 장편 대뷔작 ‘그르바비차’로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평화영화상’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작에서도 전쟁의 폭력이 여성에게 입힌 상처가 전쟁 이후에까지 지속적인 고통으로 남는다는 것을 고발한 바 있다. 개막작과 연동해 일제에 의해 희생된 정신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3부작도 특별 상영하기로 했다.

‘쟁점’ 섹션에서는 ‘사랑과 경제’를 주제로 사랑을 누리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현실을 담아낸 영화들이 경제적 가치가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때 여성에게 사랑이 가능한지 질문한다. 세네갈의 다이아나 가예 감독의 ‘반짝이는 별빛 아래’는 멀리 떨어져 있는 대륙처럼 사랑은 현실과는 멀어 보이지만 힘든 현실을 버티도록 희망을 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을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다. 홍콩의 신예 감독 류운문의 ‘과계’는 한 자녀 정책으로 젊은 부부가 자식조차 마음 놓고 낳을 수 없는 중국 본토와 돈 말고 기댈 가치가 없어진 홍콩에서 경제적 몰락이 부부 사이의 오랜 믿음의 세월조차 무너뜨리는 상황을 보여주며 사람이 진정 기댈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는 일본의 대 여배우 가가와 교코의 대표작을 상영하는 회고전도 열린다. 당시 여배우로는 드물게 프리 선언을 하고 50~60년대 거장 감독들의 대표작들에 출연하고 이후 연극, 독립영화, 텔레비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최근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영화라는 구조 안에서 여배우의 한계에 전면으로 맞서기보다는 우회하며 능동적인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해마다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여성 감독의 영화를 소개해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선 올해 중국 지역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 다큐멘터리 3편을 상영한다. 이밖에도 ‘퀴어 레인보’ 섹션과 오픈 시네마, 아시아 단편경선, ‘배리어프리’ 프로젝트 제작 영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8일간 신촌 메가박스 4개관에서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