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는 늘 산 밑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나이가 들고 나니 내게도 산촌의 유전자가 꿈틀거린다. 산에 기대 사는 꿈! 아무리 ‘악(岳)’자가 들어가도 내게 산은 늘 어머니 같은 존재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험한 산길’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산을 넘어가 본 적이 없는 내게 험한 산길은 늘 어머니의 집처럼 안전이 보장된 시원한 산행길이므로.

그런데 중국 하북과 산동을 가로지르는 태행산은 진짜로 높고도 험해서 옛날엔 특히 넘어가기 힘들었나 보다. 당나라의 시성 백거이는 인생길을 그 태행산 길에 비유했다. 그 산길이 사람 마음보다는 평탄하다고.

“험한 태행산길에 수레바퀴가 꺾어져도/ 그 길, 사람 마음보다는 평탄하다네/ 거센 무협 물결이 배를 뒤집어도/ 사람 마음보다는 잔잔하다네/ (중략)/ 우리 인생길 험난한 것은/ 물길에 있지 않고/ 산길에 있지 않고/오로지 사람 마음 안에 있네”

사람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보지 않았다면 이런 시가 나올 리 없다. 또 역으로 마음을 다스린다면 험난한 인생길이 인생을 정화하는 정화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백거이는 마흔 두 살에 어린 딸을 잃고, 마흔 네 살에 좌찬선태부라는 벼슬을 했으나 복잡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어 좌천되고는 다시는 벼슬길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죽을 때까지 시와 술과 거문고를 벗 삼고 살았다. 나는 생각한다. 만일 백거이가 죽을 때까지 고위 관료로 잘 살았다면 그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매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고. 오히려 좌천이 시와 술과 거문고를 친구로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40∼50대에 일에서 밀려나는 사람의 불안은 엄청나다. 일에서 밀려나는 일이 사람의 세계에서 쫓겨나는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먹고사는 일에 발목이 잡혀서, 아니면 돈이 보이고 권력이 보여서 일만 하는 사람들은 밤낮이 없다. 그들은 녹초가 될 때까지 일을 하면서 처자식을 위한 거였다고 스스로에게 명분을 만든다. 그런데 집에 있을 때조차 일 생각에 골똘한 남편과 아버지를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그들은 진작 남편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많다. 틱낫한 스님은 일에만 마음을 빼앗긴 남자는 바람난 남편과 같다고 했다. 항상 애인만 생각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무시하는 남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생일날에도 돈만 챙겨주고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믿는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라 불쌍한 아버지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가족에게 스스로 돈 버는 기계일 뿐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가 가족에서 정서적 자리, 문화적 자리가 없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가족과 함께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기타를 치든, 커피를 볶든, 자전거를 타든 취미 생활이 있는 아버지가 소외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지적질해주려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친구처럼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가족과 정서를 교류하는 아버지다. 우리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머슴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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