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자선과 구별 못 하는 사회
복지를 자선과 구별 못 하는 사회
  • 정재훈 /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4.02.10 09:53
  • 수정 2014-02-17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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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아이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온 가족이 빈곤에 빠진 경우, 아버지가 쓰러진 후 어머니는 식당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아이들은 하루 얼마씩 주는 여관방에서 생활하는 상황, 자녀가 있어서 기초생활보장급여도 받지 못하고 복지관에서 보내 드리는 반찬에 근근이 지하방에서 겨울 추위를 견뎌야 하는 어르신 이야기…. 사회참여 의식이 있다는 연예인들을 앞장세워서 치료 비용을 모금하고 도와주는 ‘행사’도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는 공감하면서 ARS 번호를 돌린다. 

그런데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90% 이상 돼도 그런 사연을 방송에서 보게 될까? 의식 있다는 연예인이 “시청자 여러분, 앞으로는 건강보험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험료 더 내고 건강보험 제대로 운영하는지 잘 지켜봅시다”라고 방송할 수 없을까? 세금을 조금 더 내서 어려운 어르신들의 주거·에너지 빈곤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를 방송에서는 왜 못할까? 

방송 탓만 할 일은 아니다. 공연히 구조 문제를 언급하다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해야 할 정도로 아직 방송의 공정성과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자선을 복지와 동일시하는 인식에 있다. 그렇게 한 번 남을 도와주면 그것으로 ‘훈훈한’ 복지사회가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자선은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행위가 아니다. 개별 사례를 대상으로 한다. 세금이나 보험료 납부처럼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자신이 알았을 경우 형편과 의지에 따라 안 해도 그만, 하면 좋으면서 착한 행위다. 치료비를 감당 못 해 지하 월세방으로 쫓겨 간 가족의 문제를 여러 사람들의 자선으로 한 번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방송에 나오지 않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의 문제를 알지도 못하고 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선은 좋은 일이지만 복지국가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누가 사회복지사로 일한다고 하면 “좋은 일 하십니다!”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반응한다. 이런 이야기를 사회복지사의 전문성을 인식하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개별적으로 하는 착한 일(자선)을 당신은 직업으로 늘 하니 좋은 일을 한다”는 의미 그 이상도 아니다. 

그런데 복지는 자선을 통해 개별적인 착한 행위를 통해 이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복지는 빈곤에 처했을 때 소득과 제대로 된 주거환경을 보장하는 상태다. 아프거나 지속적 돌봄이 필요할 때 치료비 걱정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태다. 사회 초년생과 실직 근로자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체계가 갖춰진 상태다.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자녀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상태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인 사회서비스 체계가 확립된 상태다. 소득·주거 보장, 의료 보장, 취업·교육 지원, 사회서비스가 복지 상태를 구성하는 기본 내용이다. 복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자선은 출발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 없이 복지 도달은 불가능하다. 

자선 방송이 가능하면 필요 없도록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자고 제안하는 대안 방송이 필요하다. 국민은 국가를 믿고 국가는 국민에게 신뢰받는 체계를 만드는 정치인과 관료, 전문가가 필요하다. 어디들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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