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보다 국가체계에 대한 신뢰 구축이 더 중요…
신뢰 없다면 어떤 복지 모델도 불가능

대선이 있었던 2012년 우리 사회에는 이른바 ‘안철수 열풍’이 불었다. 지금도 가상 안철수 신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높게 나오고 있으니 작년만 못해도 그 열풍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부·권력·명예를 가진 집단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 사회 현실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지도층’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어로 표현되는 집단은 불법, 탈법, 편법으로 부와 지위를 유지해왔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성희롱 등은 높은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이제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그런데 돈도 있고 지위도 높고 명예롭다고 불러줄 만한데 착해 보이고 법도 잘 지키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도 헤아릴 줄 알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나타나니까 대중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또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만하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는 정부가 인심 쓰듯 복지관 몇 개 만들어주고 사회복지공무원, 사회복지사 수를 상황 봐가면서 늘린다고 만들 수 없다. 국민 개개인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계, 국민연금·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 체계에 신뢰를 갖고 기꺼이 정직하게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야 가능하다. 당장은 나에게 뭐가 돌아오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게다가 내가 아프거나 실직하거나 늙었을 때 국가가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가 된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은 이미 그러한 믿음을 우리 대중이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연이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복지공약은 선거 때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임을 보여줬다. 그것도 모자라서 부정수급 사례에 초점을 맞춰 복지는 속임수로 타내는 공짜와 무임승차의 결과물임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금 내봤자 엉뚱한 곳으로 쓰기 쉬운 것이 복지다”를 계속 우리에게 속삭여왔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탈법과 편법, 그리고 부동산 투기로 번 돈으로 민영보험에 가입해 아프고 늙었을 때를 확실하게 보장받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복지는 그래서 기여를 하는 상황에서도, 혜택을 받는 상황에서도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금과 보험료 정직하게 내봤자 남들 무임승차만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지금까지 지도층이 만들어왔다. “개처럼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편법, 불법, 탈법으로 축적한 자산은 이제 더 이상 정승처럼 쓰지 않는다. 가진 자산만큼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서 재분배에 기여하는 미덕은 사라져간다. 그러나 자신과 가족의 만일에 대비한 민영보험에는 자산과 소득에 걸맞게 많은 기여금을 낸다.

누구라도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내는 것을 즐거워서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왜 이렇게 많이 내야 해?”라는 불평을 하다가도 결국 내가 낸 돈이 공공복지에 쓰이고 결국 나한테도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어서 내는 것이다. 정책을 누군가 결정했을 때 사회 구성원들이 그 결정을 믿고 따르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 지도층은 그러한 믿음을 앞장서서 무너뜨려왔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한경쟁 자체보다는 국가체계에 대한 신뢰 구축이다. 신뢰가 없다면 어떤 복지 모델도 불가능하다. 그냥 무시와 경멸의 대상으로 배척받을 뿐이다. 어쩌면 이 상황을 우리 지도층은 바라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이 계속 복지를 멸시의 대상으로 본다면 기득권 유지가 훨씬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도층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복지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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