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문제 다룬 퀴어무비… ‘특이하다는 것’은 주류적 시선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 경계 무의미함을 통렬히 파고들어

 

로렌스가 여장을 시작할 때, 하늘 아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친구 프레드는 로렌스의 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발을 선물한다. 그러나 프레드는 끝내 지옥 같은 타인의 시선에 포획당하고, 진정한 남자를 원하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로렌스가 여장을 시작할 때, 하늘 아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친구 프레드는 로렌스의 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발을 선물한다. 그러나 프레드는 끝내 지옥 같은 타인의 시선에 포획당하고, 진정한 남자를 원하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세상과 다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지극히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이 여자와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도 여자가 되고 싶으니까. 베르티옴 문학상을 타고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로렌스는 지금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장을 감행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약관 24세의 캐나다 출신 게이 감독인 자비에 돌란의 ‘로렌스 애니웨이’는 제목이 말해주듯, 단지 이성의 옷을 입고 싶어 하는 트랜스베스티즘(Transvestism)이 있는 로렌스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혹은 그녀는 제목 그대로 어찌됐든 로렌스다. 정상과 비정상, 남성과 여성의 경계의 무의미함을 통렬히 파고드는 영화는 우리가 말하는 ‘특이하다는 것’ 역시 주류적 시선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로렌스는 남자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상태를 ‘물속에서 숨 참기를 하고 가만히 있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죽기 일보 직전에 물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은유적으로 고백한다. 반면 광고회사에 다니는 여자친구 프레드는 수면 아래로 끊임없이 잠식하면서 로렌스를 사랑했지만 결국 다른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부장제에 적응하려 자기 자신을 점차 지워간다.

서로 상반되는 길을 걷지만, 문제는 로렌스가 여장을 하든 남장을 하든 평생 프레드를 사랑하는 데 있다. 영화는 장장 168분에 걸쳐 1989년부터 대략 10년간의 프레드와 로렌스의 관계를 뒤따라간다. 로렌스가 여장을 시작했을 때, 하늘 아래 한계는 없다고 생각하는 프레드는 로렌스의 성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발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프레드는 끝내 지옥 같은 타인의 시선에 포획당하고, 진정한 남자를 원하는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즉, 이 영화는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 퀴어 영화지만, 동시에 로렌스라는 인간이 여장이라는 행동 하나만을 바꾸었는데도,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서로가 서로를 아무리 사랑해도 욕망이 있는 인간들이 얼마나 사랑하는 이의 차이를 받아들이기 힘든지, 얼마나 헤매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번민하는지 그 과정의 지난함에 모든 러닝타임을 쏟아붓는다. 그러므로 로렌스와 프레드가 헤어진 것은 로렌스의 여장 때문인가? 프레드가 로렌스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낙태해버린 소통의 부재 때문인가?

자비에 돌란 감독은 이러한 문제를 다양한 색감과 풍부한 영화 스타일을 활용해 탐미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옷과 나비는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첫 장면부터 로렌스는 프레드에게 세탁기에 든 옷을 머리 위로 부어버린 채 낄낄 거리고,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한 블랙섬에서는 초현실적으로 하늘에서 옷이 너울너울 떨어진다. 그러나 로렌스는 어떤 옷을 입든 맨몸의 인간일 뿐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거듭하면서 프레드가 로렌스와 재회했을 때, 그녀는 로렌스의 외투를 벗기고 남은 옷마저 벗어줄 것을 요청한다. 사실 로렌스가 여장을 하지 않고 남자로 살아갔을 때, 프레드와 그토록 행복했을 때, 프레드가 로렌스에게 건넨 첫 대사는 “로렌스, 오늘 밤에 뭐 입을 거야?”였고, 그는 “아무 것도 안 입을 거야”라고 대답했었다.

이러한 로렌스의 변화는 결국 로렌스의 어머니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삶을 찾는 데 영향을 미친다. 늘 TV만 보는 남편을 둔 적막한 집에 살던 어머니는 로렌스가 프레드와 헤어진 채 비를 맞고 문 앞에 나타나자 용감하게 TV를 던져버리고 집을 나선다. 옥탑방을 구하고, 아들에게 “넌 성별을 바꾸었는데 난 주소도 못 바꾸냐”고 대꾸한다. 정말 여성들이 용감해지는 데 위안이 되는 대사 아닌가.

영화의 마지막은 1987년 둘이 광고 촬영장에서 처음 그저 남자와 여자로 만났을 당시의 로렌스와 프레드다. 프레드의 당찬 에너지에 반한 로렌스는 프레드에게 철사로 만든 나비 무늬의 목걸이를 건네준다. 그러자 프레드는 로렌스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로렌스 알리아’라고 대답하자, ‘로렌스 뭐냐’고 되묻는 프레드. 그러자 로렌스는 이렇게 말한다. 애니웨이 로렌스, 어찌됐든 로렌스라고.

무슨 옷을 입든 어떤 고치 속에 들어 있든, 로렌스의 영혼, 이 아름다운 나비는 맨몸의 맨살의 날개로 로렌스 안에서 끊임없이 퍼덕거린다. 복장도착자라는 이유만으로 파면을 당한 로렌스가 원하는 것은 평범함이고, 여장한 자신 역시 평범한 사람이라 믿는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반항이 아닌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프레드가 로렌스의 등 위에 써준 것을 잊지 말자.

‘건강을 지킬 것과 위험을 피할 것과 과거를 잊고 희망을 가질 것.’ 나의 로렌스, 그 미세한 차이를 상징하는 우리의 타자 로렌스와 헤어지고 만나고 부딪히더라도 이 말만큼은 잊지 말자. 어쨌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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