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지원 조직들이 다양해지고, 일반 주민들의 참여는 물론이고, 성격이 다른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는 융합적인 프로세스의 프로젝트가 일반화되면서 능력 있는 기획자에 대한 요구가 많다. 그런데 능력 있는 기획자란 누구일까? 아니 거꾸로, 초보 기획자는 어떤 기획자일까? ‘설득하려는’ 기획자다.

초보 기획자는 자신이 짜낸 기획 구상을, 함께 하는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설득하려고 든다. 하지만 유능한 기획자는 자기구상을 그리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결국 자기 구상대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획자다. 물론 기획자는 미리 일머리를 잘 파악하고, 일이 순리대로 잘 풀려가도록 계획을 합리적으로 잘 짤 수 있어야 하며, 이를 문서로도 요령 있게 잘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있다.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줄 아는 것이다.

기획자가 자기 구상을 너무 드러내고 설득하려 들면, 함께 하는 다른 이들이 위축되고, 마지못해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야 그 일이 잘 될 리 없다. 또 일이 실제 실행 과정에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생긴다. 그때 갈등을 조정하고 협업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힘이 결정적이다.

내가 사는 성미산마을에서는 ‘바구니토론’이란 것을 한다. 2003년 2월 성미산지키기 운동이 피크에 달했을 때 동시에 마을에서는 대안학교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딴 동네로 이사를 가겠다는 다섯 가구의 이웃들을 주저앉히기 위해 대안학교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던 것이다. 3개월 동안의 워크샵과 토론회, 강연회를 거치고 드디어 초등 대안학교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으는 자리가 열렸다. 이제 그 다섯 가구가 이사 가지 않아도 된다며 모두들 기뻐하는 분위기였지만, 반대하는 주민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지금 초등 5학년이다. 곧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 되면 입시 경쟁이 심해지니 대안학교를 만들 거라면 중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이어서 또 다른 주민이 반대에 나선다. “우리 아이는 이미 중학생이다. 초등학교를 설립한다기에 가만히 있었지만 중학교를 만든다면야,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고등학교 되는 것 아닌가?”

대안학교 설립을 준비하던 추진팀은 그 자리에서 12년제 초중고 대안학교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12년제 대안학교의 탄생은 이렇게 결정된 것이다. 처음부터 12년제 대안학교의 구상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동네사람들의 욕구를 주어 담듯 다 받아들여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의사결정 방식을 ‘바구니 토론’이라 부른다.

마을축제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올해 축제에서 하고 싶은 거 다 이야기 하시오’ 하면 다들 한두 가지씩 내놓는다. 더 이상 제안이 없으면, 모인 제안을 엎어놓고 배열을 한다. 막상 배열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누구도 미리 생각해내지 못한 참신한 아이디어가 마구 속출한다(창발, emergence).

기획자가 이끄는 프로젝트는 그가 아무리 훌륭한 기획자라도 그 기획자의 구상 범위를 크게 넘지 못하지만, 마을에서는 이른바 주민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바구니토론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이웃 간에 의 상할까봐서다. 동네 이웃들이 내놓은 의견이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고, 그 요구의 옳고 그름과 중요도의 경중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설령 판단이 된다 해도 나름 이유가 있어 내놓은 제안을, 동네에서 이웃 간에 의 상할까봐 왠만 하면 다 수용하는 거다.

그러다보니 바구니토론의 진가는 ‘참여’에서 발휘된다. 몇몇 기획자나 전문가의 머리에서 나와 ‘마스터플랜이요’ 하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욕구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자기의 의견을 내고, 그걸 한꺼번에 엎어놓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결론을 내니까, 모두의 의견이 다 담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제안하고, 그 제안에 나의 필요와 욕구가 들어가 있으니 ‘내 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내 일로 열심일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필요와 조건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다 보면, 누군가가 미리 기준을 정해두고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고 판단하려 들면, 솔직히, 좀, 재수 없지 않나?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