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마을 후배가 힘이 쭉 빠져서는 술을 사달라며 찾아왔다. 표정이 심상찮아 다그치자 한참을 뜸들이다 토해내는데 아주 심각했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보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실망을 넘어 끓어오르는 분노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더 괴로운 것은 이 문제를 풀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풀어보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더 화가 나고 상황은 더 꼬이고 만다는 것이다. NGO 단체나 ‘강한 연결망’의 마을살이를 하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다.

강한 연결망이란 특정의 미션(mission)이 있고, 이 미션을 동의할 뿐만 아니라 미션 실현에 함께 동참하겠다는 사람들의 모임(association)을 말한다. 하지만 막상 실행 단계에 들어서면 처음에 동의하고 합의한 것과는 달리 크고 작은 소통상의 ‘갈등’을 겪게 된다. 거듭되는 회의와 지난한 과정에 지치게 되고, 이른바 조직에 ‘피로’가 생긴다. 급기야는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일정한 ‘배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수행할 미션이 있고, 이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수행하려고 하는 한 불가피한 부작용과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부작용이 강한 연결망 내부에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배는 세 시간을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토하듯 그간의 갈등 과정을 쏟아냈다.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짱가, 고마워! 좀 풀렸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근데 사실 난 별로 한 얘기가 없었다. 그저 가끔 “아니, 정말?” “뭐? 어떻게 너한테 그럴 수가 있어?” 추임새 넣듯 몇 마디 거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후배는 뭔가 후련해하며 돌아섰다. 만일 내가 그 갈등의 상황에 직접 연결돼 있거나, 지난 사정을 훤히 알고 있을 법한 경우라면 이 후배가 나를 찾아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못 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후배가 속한 강한 연결망 언저리에 ‘약하게’ 걸친 느슨한 관계망에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약한 연결망은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다. ‘재생산 풀(pool)’이다. 요즘 대부분의 사회단체들에서 대를 이을 후배들이 없다며 ‘요즘 젊은이’의 근성과 투지 부족을 아쉬워한다. 젊은 피의 원활한 진입은 조직의 생명 연장과 활력을 위해 필수다. 젊은 피는 보통 약한 연결망에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발굴된다. 별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책임감 없이 강한 연결망의 언저리에 접속해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강한 연결망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 부담이 없어야 접속이 수월하고, 그래야 자연스레 활동을 접하고 재미를 느끼면서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때문이다.

강한 연결망은 미션 수행과 결사체 유지를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수시로 조직의 미션을 환기하고, 모든 활동 과정에서 미션의 부합 여부를 확인하고, 전체 구성원들 사이에서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가 작동한다. 그런데 정체성은 불가피하게 조직의 폐쇄성을 유발하고 조직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저해하며 결국에는 조직의 생명력을 저하시키기도 한다. 어떤 조직이든 지속가능한 생존과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다양성과 새로운 에너지를 조직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른바 이종교배를 해내지 못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하고 만다. 약한 연결망은 바로 이러한 ‘외부성의 정치’가 이뤄지는 환경이다. 

이렇듯 생태계란 바로 강한 연결망과 약한 연결망이 함께 존재하며 이것이 서로 연결돼 순환하는 상태를 이른다. 마을 역시 강한 연결망과 약한 연결망이 서로 연결돼 공존하는 사람들의 관계망이다. 마을살이의 단골메뉴로 카페가 인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카페를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강한 연결망에 해당한다면, 카페에서 이뤄지는 크고 작은 다양한 모임과 행사를 통해 형성되는 주민들의 관계망은 바로 느슨한 관계망으로, 약한 연결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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