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세 살 때부터 한국 언론에 제법 오르내리고 있는 핸드볼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국 실업팀에서는 한 번도 뛴 경력이 없다.
고교 졸업 후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에 실업팀을 포기하고 한국체육대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 여러 실업팀에서 영입 제의가 왔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팀 주축으로 활약했기 때문에 연봉도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나는 ‘공부 못하고 집안이 가난하다’는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을 없애겠다는 비전을 위해 국내보다는 유럽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유통회사 ‘이즈미’로 입단하게 됐다. 일본 진출 첫해에는 일본 문화를 익히고, 일본식 핸드볼을 얼마나 빨리 익히는 것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어느 정도 일본식 핸드볼을 몸에 익혔다.
일본 진출 첫해 이즈미는 2부에서 1부로 승격됐다. 1부로 승격된 그해에 나는 선수 겸 감독대행의 책임을 맡았고, 팀을 1부 리그 3위까지 올려놓았다. 이후 이즈미 구단주는 내게 선수 겸 감독인 플레잉 코치로 팀을 이끌어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이후 1996년에 나는 24세 최연소 감독으로 직위가 승격됐고, 그때부터 ‘일본에 한국식 핸드볼을 전수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 선수들의 최대 약점은 기초 체력과 개인주의 성격이었다. 그래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루 3~4시간 지속하는 한국식 훈련법을 도입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기초 체력이 탄탄해진 선수들은 전반은 물론 후반까지 팔팔하게 코트를 누볐고,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래서일까. 히로시마 이즈미는 창단 3년 만인 1996년에 일본 리그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한국식 팀워크 훈련도 적용했다.
하루는 원정 경기를 위해 팀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두 명의 선수가 ‘맛있다’를 연발하며 부스럭거리면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팀워크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곧바로 다음 휴게소에서 먹거리를 한 보따리 사 왔다. 그리고 두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과 먹을 것을 나눴다. 그리고 말했다.
“팀워크는 코트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다. 콩 한 쪽을 나눠 먹으며 쌓은 신뢰는 반드시 코트에서 협동심으로 발휘된다. 이건 한국팀의 정서이긴 하지만, 한국인인 내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너희는 무조건 콩 한 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
선수들은 내 말을 잘 이해했고, 곧바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본팀은 한국팀보다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계약 때 선수는 회사의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하기 때문에 은퇴하기 전까지는 걱정 없이 한솥밥을 먹을 수 있다. 안정적인 선수생활 속에서 선수들은 오로지 즐기면서 경기력 향상에만 힘을 쏟으면 됐고, 결과적으로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강압적·의무적인 훈련이 아닌 스스로 즐기는 핸드볼을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즉 코트에서 더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료들과 똑같이 훈련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랬더니 훈련 전, 훈련을 마친 후, 쉬는 날 등 항시 남보다 잘하기 위해 개인 훈련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내가 감독직을 맡았던 1995년부터 2007년까지 히로시마 이즈미는 8번의 일본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그 외의 대회까지 포함해 총 27회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나는 그 공로로 히로시마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로 내가 히로시마를 떠난 지 5년이 지났다. 지금도 히로시마 이즈미 선수들에게서 종종 연락이 온다. 그럴 때면 감독직을 맡으며 일본에 발 묶여서 유럽 리그에 진출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씻은 듯 날아간다.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하러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